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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입니다 Feb 21. 2024

가을 LA_안 가면 서운한 The Getty

우리의 마지막은 언제나 여기로

 로스앤젤레스는 그런 곳이다. 간절함이 다 사라지는. 막상 있을 때는 특별한가? 싶지만 떠나고 나서 보면 그렇게 예뻐 보인다. 마치 매일 있는 것처럼 간절함 없이 지내는데 돌아와서 보니 못 즐긴 게 한가득이다. 이 간절함이란 나를 아등바등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여기에 있으면 하늘 한번 보면 또 괜찮고 도시에 없을 건 또 없고.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것들도 많고 그렇다. 자연과 문명이 비슷하게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즐기면서 살게 될 수도 있겠다. 일단 날씨가 좋다. 근데 날씨가 매일 똑같으면 사람이 정신을 똑바로 차릴 일이 없어진달까. -우리가 갔을 때 엘에이에 엄청난 폭우가 왔는데 이렇게 오는 날이 별로 없다고 했다. 지금 가뭄이기도 하고 이렇게 비 오는 날이 별로 없어서 배수시설이 잘 안 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침수된 동네가 있었다.- 예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살다 온 분이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새해가 좀 추워야 결심하는데 여기는 계속 더우니까 새 마음이 안 생겨.” 이건 고작 엘에이 2번 다녀온 아주 겉모습만 보고 한 생각이다. 그런데 2번 다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래?” 코난처럼 바라봤지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자연을 보러 캘리포니아에 간다면 굉장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캘리포니아 방문 목적은 자연이 되지 못했다. 캘리포니아 중에서 엘에이 여행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해물파전 같다. 테두리는 진짜 맛있는데 먹다 보면 가운데는 남는다. 가격은 꽤 나가고 기름진 만큼 맛있고 그런데 다 먹긴 힘든 곳. 엘에이는 몇 군데 가면 딱히 더 갈 곳이 없어진다. 유니버설을 매일 갈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엘에이에서 마지막 날 딱 한 군데만 간다면 어디를 갈까? 결국 우리는 이번에도 게티를 선택했다.

게티저 잔디는 항상 누군가 구르는군.

 4년 전 게티에 처음 갔던 날 비가 왔는데 우산까지 빌려주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게티는 안에 미술품도 대단하지만 정원이 또 보기 드문 풍경이다. 4년 전에 이 정원을 한참 보다가 메가 버스 예약 시간까지 터미널에 못 가서 라스베이거스행 버스를 놓쳤다. 그 당시 7월에 본 정원은 발길을 멈추게 할 만큼 눈길을 끌었지만, 1월은 나뭇잎이 떨어져 좀 휑하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잔디에서 구르고 있다.

 게티에서 가장 붐볐던 West Pavilion에서 19세기 그림을 보러 간다. 고흐도 모네도 넘치도록 보다가 지하에서 전시가 있었다. 이게 또 좋았다. 넓기도 하고 직원도 많고 근데 직원들은 다 친절하고 이게 다 무료로 운영되고. 갈 때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싶다. 게티는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에라도 한 번은 경험할만하다.

 

꽃도 고흐가 그리면 표정이 생긴다.
모네가 그린 루앙대성당 연작 중 1점. 모네는 성당이 아니라 빛을 그렸다고 한다.

 게티에서는 고흐의 아이리스를 볼 수 있다. 생각보다 크기가 많이 크진 않다. 하지만 고흐 그림이 크기가 엄청난 것도 없긴 하다. 보통 크기가 크면 쉽게 놀라는데 크기가 작아도 집약된 에너지에 놀라게 되는 고흐의 그림이다.

밖에 나가서 마지막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게티는 우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밥도 여기서 해결한다. 그림을 다 보고 먹으러 갔더니 정원에 있던 카페랑 여기저기 다 닫기 시작해서 유일한 선택지는 카페테리아뿐이었다. 4년 전에 카페테리아에서 한 병에 5달러 하던 스마트워터 보고 놀라긴 했었는데 그때 여기서 정원에서 먹은 감자튀김은 이상할 만큼 낭만적이었다. 만화 고기에 맞서는 거의 만화 감자튀김이었다. 이번엔 추워서 건물 안에서 먹으려니 그  분위기가 아니다. 갑자기 미국 구내식당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음식이 맛없어졌다. 그땐 맛있었는데 이상하다.

다 먹고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데 불어가 가득하다. 영어만 듣다가 불어를 들으니까 갑자기 또 여행 시작한 기분이 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도.

하늘과 구름이 예쁜 여기는 LA
여전히 내 입맛에는 오뚜기 스프가 딱...

입구에서 겨우 우버를 탄 우리는 타깃 가서 마지막 기념품 사고 짐 싸고 집에 왔다. 혹시 쇼핑이 빨리 끝나면 갈 식당도 찾아놨지만 항상 시간은 부족했다. 타깃 가는 길에 우버기사가 여행 오면 이 것도 봐야 한다며 베벌리힐스도 구경시켜 줬다. CVS랑 타깃 붙어있는 곳에 갔는데 타깃 입구가 안 보여서 한참 돌긴 했지만. 홀마켓 가다 타깃 가니까 가격도 저렴한 것 같아서 만족스럽게 쇼핑을 마치고 나왔다. 숙소 가서 부랴부랴 짐 챙기고 이제 공항으로 간다.

 우리의 여행은 이제 한국에서 다시 시작이다.

이번에 가장 좋았던 전시. 병상에서 창밖을 보다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비 내리는 새벽 인천공항
집에 도착하자 짬뽕을 먹고 잠들었다.

추신

1. 이번 게티에서는 사진전이 가장 좋았습니다. 아픈 기간에 창밖을 바라봤다는 말 때문에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2. 동부에 있다 캘리포니아로 오니까 왜 캘리스러움이 있는지 이제 알았습니다. 저는 캘리 바이브가 좋았습니다.

3. IL Pastaio 제가 가려다 못 간 식당인데 파스타 좋아하신다면 추천이라고 합니다. 카페는 Urth Caffe를 가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4. 다음은 편은 마지막 후기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5. [삼남매의 미국 미술관 여행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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