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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징 Oct 26. 2022

수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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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시간이 허락한다면 거의 매일 수영을 하러 간다.  달 전 충동적으로 실내 수영장에 갔다. 어느 날 '수영장에 가봐야지' 생각이 들기에, 내 게으름이 발목을 잡기 전에 수영장에 가버렸다. 12년 만의 실내 수영장이었다. 일반 수영복이 없어서 바캉스용 홀터넥 원피스 수영복을 가져갔다. 누가 뭐라 하면 어쩌지 고민하며. (다행히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수영에 집중하기엔 꽤 불편해서 일주일쯤 후에 일반 수영복을 샀다.)


  아이들을 키우며 워터 파크야 여러 번 갔지만, 실내수영장은 오랜만이었다. 25m 레인 앞에서  '저 끝까지 갈 수 있나?' 잠시 망설다. 일단 벽을 차고 출발... 그리고 끝까지 갔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25m 레인을 한번 수영하고 나면 한참을 서서 쉬긴 했지만, 아무튼 내 몸은 수영을 기억하고 있었다. 첫날 쉬엄쉬엄 500m 수영을 채우 고선, 한 주에 한 번은 와야지 마음먹었다.


  나는 한 주에 한 번이 아니라 두세 번씩 수영을 하러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한 달이 지나자 1000m가 스마트 워치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혼자서 그저 물을 헤엄쳐 나가는 것뿐인데, 나도 모르게 "아~ 재미있다." 혼잣말을 했다. 말할 이도 없이, 볼 것도 없이 수영만 하는 게 왜 재미있지? 생각해 봤다. '가벼워서' 수영이 재미있다.


   물속에서는 둥실 내 몸이 가볍다. 지상에서는 빨리 뛰지도 못하면서, 무겁던 내 몸이 물살을 가르고 나아간다. 운동한 다음날 근육통에 찌뿌둥하던 날에도, 물속에서는 그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물속에서 내 몸은 자유롭다.


  물속에서는 내 마음도 가볍다. 내가 처한 여러  문제들과 고민, 지나간 일들에 대한 번민마저... 물속에서는 잠시나마 무거운 생각을 내려놓는다. 그냥 물속을 유영한다. 수영을 하고 있노라면 스트레스는 물속에 흘러가버린다. 명상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이런 기분이 아닐까. 나와 물만이 있는 곳. 그저 팔과 다리를 움직여 나아갈 것만 생각하는 것.


  게다가 수영은 하다 보니 는다. 조금씩 꾸준히 발전한다. 사실 내 수영의 역사에서, 수영을 제대로 배운 건 20년 전 한 달 정도였기에 내 수영실력이 자랑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계속 스스로의 자세에 의문을 갖고 연습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롤링이, 어느 날은 슬라이딩이, 어느 날은 물 잡기가 조금씩 이해된다. 어느 날은 물을 따라 내 몸이 스윽 나아가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퇴보하는 기분이 드는 내 삶에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있다는 건 위로가 된다.


  그리고 모든 이유를 떠나 즐겁다. 즐거운데 마음치유가 된다. 그래서 요즘에는 주말과 수영장이 쉬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주 4일을 가고 있다. 오늘은 1550m를 수영하고 왔다. 우울한 날,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있는 날... 누군가도 그렇다면 수영장에 데려가고 싶다. 우리는 좀 더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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