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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Nov 16. 2022

자발적 은퇴를 할 수 있을까?

캐디와 사람

"아!! 아무 말도 하지 마. 언니 말을 듣고 있으면 내가 아무것도 못할 거 같다고!"

막냇동생의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이 풀리는 순간,

우리는 그녀의 명령대로 입을 다물었다.

왁자지껄했던 주점의 소음도 모락모락 피어나던 고기불판의 연기도 순간 정지한 듯했다.

"그래.. 맞아. 알면 더 못해.. 난 인정! 모르는 게 상책이야. 일단 부딪쳐봐. 아님 마는 거지 뭐."

바닥을 들어 찬성의 뜻을 보이며 내가 정적을 깼다.

"그래도 잘 알아보고 하는 것도 좋지 않아?"

여전히 미련이 남았는지 둘째 동생이 한마디를 보탠다.

"아니야. 그러면 더 두려워서 뭘 못하겠어."

그녀는 단호하다.


우리는 다섯 자매다.

공교롭게도 나이 앞자리의 숫자가 각기 다르다.

50대부터 20대인 막내까지 각 세대를 대표한다.

는 동생들과의 만남을 좋아한다.

특히 막내와의 만남은 막내가 내 아들들과 같은 세대다 보니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그녀를 통해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어 좋다.

그와 아울러  회사에서도 동료란 이름으로 여러 세대들이 함께 부대껴야 하니  여러모로 동생들과의 만남은 내게  배움과 성찰의 기회가 된다.  그래서 동생들의 부름에는 기꺼이 달려 나간다.

게다가 나를 마다하지 않고  시간과 마음을 내주는 것에 내가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막내는 간호사다.

대학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했고 병원 실습기간에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준 병원에 취직도 했다.

하지만 실습과 실제는 연히 다르다는 것을 체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고 그래도 버티고 버텨 1년을 채우고 자진해서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

간간이 뉴스에 들려오는 '태움'이라는 불합리한 인간관계가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디딘 청춘들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부조리였을 것이다.

그 멈춤은 오래지 않았다.

이번엔 좀 규모가 작은 개인 한의원에 취직을 했다.

매일 바뀌는 환자들이야 어쩔 수 없으나 상시 밀접 접촉해야 할 사람들이 적다 보니 이전 병원보다는 좀 수월한 눈치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작은 잡음들이 생기고, 사소한 것들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또 다른 고단함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예측컨대   자기 자신에게 누구보다 본인이 갈등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나의 지금이 자신에게 최선인지를 묻고 물었을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기에는 새파란 청춘이라는 빛깔이 오히려 서슬 퍼렇게 그녀를 옥죄어 왔을 것이다.

그 물음에 그녀는 스스로 답을 내렸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자신에게 주문한 듯하다.


내가 캐디를 시작했을 때는 캐디 정년(停年)이 있었다.

근로계약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문서로 규정지어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만 40세가 정년임은 업계에선 공공연한 관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터무니없는 설정이었다.

20대에 시작한 일.. 그때는 40세 이후의 인생을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으므로 그 나이가 과연 내게 오기나  할까라는 막연함으로 문제 인식을 하지 못했다.

 천년을 맞고 세상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우리나라도 고도성장의 수혜를 받게 되어서인지  차츰 여가와 일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함께  골퍼들은 늘어나고 그에 따른 캐디의 수급은 원활하지 않아 유야무야 캐디 정년의 형식은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는 골프 코스 레이아웃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골프장도 많이 신설되었고 명문코스를 지향하며 코스 설계의 차별화와 난이도의 구성은 경력 캐디의 쓸모를 인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서브 스킬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어 코스 정보를 잘 습득하기만 하면 되니 고작 40세에 그 이력을 소멸시켜버리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기도 했을 터...

정년제가 없어진다는 건 현역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고마운 일일 수도 있지만 과연 그러기만 할까?

자발적 은퇴가 더 어려워진 상황.

배부른 소리라 할 수 있다. 인정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의 목적이 '돈'만이 아니라는 건  어머니들의 삶에서 익히 배워 알고 있다.

하지만 일을 아예 놓거나 새로운 직업으로의 전환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솔직히 아주 조금은 능동적 선택이 아닌 피동에 의한 어쩔 수 없음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본다.

체념보다 간절함에 가까운 위기가 기회를 끌어올릴 마중물이 되어 줄 거라는 기대로 말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동료들이 주저한다.

익숙함에 길들여져 버린 삶.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이라는 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이나 그 활동의 대상이 '일'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나는 어디에 밑줄을 긋는 것일까?

나는 그리고 우리 동료들은 그 정의에 부합하며 살고 있는데 무엇이 자꾸 마음에 소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인가?

어릴 때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길을 알려주고 그 길만 잘 쫓아가면 되었는데 이젠 스스로 결정하고 길을 찾아가라 하니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강연회를 쫓아다니는 걸까?

사회적으로 저명한 지식인들은 우리보다 더 지혜롭게 길을 찾으며 살아갈 거라는 절대적 믿음으로 뭔가 하나라도 얻어보려 그들의 말과 글에 기대 보는 것일까?


늘 새로운 오늘에 서투른 사람들..

그래서 미워할 수 없다.

그래서 마냥 등 떠밀 수 없다.

삶의 외줄 타기에  발밑에만 집중할 수 없는 그 고단함에 나도 너도 애닯다.


막내는 이 참에 육지로 가겠다고 한다.

제주사람들은 제주 외에 다른 지역을 육지라 한다.

섬을 떠난다는 것.

자신의 연고를 떠난다는 것.

진정으로 홀로서기를 하겠다는 다짐.

친구도 가족도 없는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

그리고 경제적이든 어떤 방식으로도 가족의 도움은 받지 않겠노라 선언한다.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아야 그 절실함이  자신을 이끌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괜찮겠어?"

"나도 몰라. 가봐야 알지."

"한 번은 더 내게 기회를 줘 보고 싶어. 그래도 안되면 이건 내 길이 아니라 생각하고 단념할 거야. 하지만 한 번만 해보고 포기하는 건 그동안 내가 이 일에 쏟아부은 게 너무 많이 아까워."

말하는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왜 우리 막내를 자주 보고 싶어 했는지...

내가 갖지 못한, 그래서 가지고 싶은 것이 그녀에게 있었다.

익숙함과 안락함을 떨치고 낯섦을 향해 자진해서 나아가려는  용기.

불안을 없애는 방법은 '그냥 하는 것'이라는 것.

인간에게 동기는 대단하지 않다.


가을바람에 후드득 낙엽이 비처럼 내린다.

구겨진 운동화 뒤꿈치를 검지 손가락으로 곧추 세우며 발에 맞춰 신는다.

현관문 손잡이를 돌려 낙엽비 속으로 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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