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아이들은 중학교 입학 후 첫 체육대회로 들떠있다. 중3이라서 졸업하기 전, 이제라도 하게 되어 다행이다.
아이들은 반티로 축구 유니폼을 선택하고는 반티 뒷면에 새길 이름이나 별명을 자유롭게 정했다.
내 별명이 "청블리"라서 원래 자신이 *블리 원조라고 주장하는 학생부터, 담임의 별명을 그대로 적용하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중 몇 명 학생들은 사진을 내게 찍어달라고 요청을 했다.
어떤 남학생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를 이름을 유니폼 뒷면에 새겼다. "까리" "리딱" "청블"
"청블"은 "청블리"를 쓰다만 글자인 것 같았지만 나머지 이름은 짐작조차 되지 않았는데, 세 명이서 나란히 서서 완전체가 되니 그 실체가 드러났다.
청블리 따까리
난 아이들에게 "따까리"를 강요한 적 없는데... "따까리"는 경상도 사투리로 뚜껑 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부하 혹은 졸개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하며 실제로 그런 신분은 아니라도 명령에 잘 따르는 상하관계를 지칭한다고 한다.
내가 아이들을 "따까리"라고 칭했다면 혹 상처가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무언의 압박을 준 적도 없었는데 아이들끼리 "따까리"를 자발적으로 자처한 걸 보고, 담임쌤이 그래도 좀 편하니까 이런 장난을 친다는 생각에 귀여운 느낌까지 들었다. 난 그 장난을 그냥 넘기면 오히려 아이들이 섭섭할 것 같아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아이들 초상권 보호를 위해 등의 글자만 나오도록 사진을 편집했다)
우리반은 금요일 체육대회인데 월요일에 반티를 받았다. 학생들의 반티 선정 과정에서 갈등이 좀 있었다. 반티를 꼭 해야하냐는 의견도 있었고, 반티 선정 과정에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반티를 꼭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안 한다면 학교 체육복이나 생활복으로 통일해서 입어도 되니까. 그러나 모두의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대다수가 원하는 바가 있다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양보하고 따르는 것이 단합이고 공동체 생활입니다. 난 담임으로 뭘 하라, 마라 결정할 자격은 없지만, 여러분들 다수의 결정사항을 존중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단지 그 단합의 의미와 공동체생활을 배우며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의외로 빠른 시간 내에 아이들끼리 협력을 이루어낸 것 같아 흐뭇했다.
반티는 제일 먼저 받았지만, 반티 받은 날 줄다리기 예선은 부전승 이후 바로 광탈했다ㅠㅠ
응원을 나갔다가 그저 애쓰고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만 던지고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종례할 때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꼴찌를 해도 좋냐고 묻길래 그래도 된다고 했다.
그저 즐겁게 참여하면 된다고 했다. 다치지만 말고...
그러니까 공부를 꼴찌 해도 되냐고 다시 묻길래... "그건 쫌.. "하면서 얼버무렸다.ㅋㅋ
우리반 성적이 좋으면 내 기분이 좋지 않을 수는 없지만, 결과만이 아이들이 목표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최선을 다하고 즐거움으로 참여하는 그 과정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야 결과에 관계없이 과정이 즐거울 거니까.
아이들은 행복함으로 반티를 받아들었다. 어떤 반도 이루지 못한 신속한 진행과정을 뿌듯해하며, 다른 반의 부러움의 시선을 받으며... 자신의 이름이나 별명을 유니폼에 새기면서, 그걸 서로 확인하면서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그저 그 소소한 즐거움으로 이미 충분했다. 나도 더불어 행복했다.
체육대회에서 부디 아무도 다치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배우고,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며 오래도록 기억되는 추억으로 새겨지길 기대하고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