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단테 신곡 사이 그 어디
커피 마시며 단테 — Coffee with Dante
# 29
지구는 작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결코 알지 못한다. 이 땅과 도시, 나의 집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선이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갈수록 실체는 선명해진다. 우주의 광막함 속에서 지구는 그저 먼지 같은 점에 불과하다. 그 작은 점 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과 거창하게 쌓아 올린 업적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단테는 천국의 가장 높은 곳에서 자신이 떠나온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그것은 하찮은 존재를 향한 비웃음이 아니라, 집착에서 벗어난 자의 맑은 깨달음이었다. 이 작은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이토록 좁은 곳에 영혼을 묶어두고 매달렸음을 깨닫는 순간 단테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그는 그 작은 지구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천국을 보고 지옥을 걸어본 순례자로서, 그는 다시 먼지 같은 그 땅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썼다. 이 작은 행성 위에서, 이 작은 행성에 남겨진 이들을 위하여.
지구는 작다. 그러나 그 작은 점 위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질문을 던지며, 진리를 향해 걷는 인간의 마음만은 결코 작지 않다. 유한함 속에서 영원을 꿈꾸는 그 분투야말로 우주를 지탱하는 가장 거대한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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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지구의 중심에서 힘이 아닌 사랑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진실을 목격한다. 루시퍼는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으나 사랑이 없었기에 영원한 얼음 속에 박혀 있었다. 사랑 없는 힘은 고립과 결박일 뿐임을 몸소 증명한 것이다. 반면 천국의 중심에는 힘이 된 사랑이 우주를 박동하게 만든다. 결국 지구는 사랑 없는 힘의 비참함과 힘이 된 사랑의 숭고함이 교차하는 곳이다. 인간은 그 사이에서 어떤 에너지를 선택하며 살아갈지 결정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다.
고통의 왕국의 황제가
얼음에서 가슴 중간까지 나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인들과 더 잘 어울린다,
거인들이 그의 팔과 어울리는 것보다.
— 단테, 『신곡』 지옥편 제34곡
단테는 지구의 심장부에서 힘이 아닌 사랑이 세상을 움직이는 진정한 동력임을 목격한다. 루시퍼는 우주를 위협할 강력한 힘을 가졌으나 사랑이 없었기에 지구의 가장 낮은 얼음 속에 영원히 박혔다. 사랑 없는 힘은 결국 스스로를 가두는 결박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반면 천국의 정점에는 모든 별을 돌리는 힘이 된 사랑이 존재한다. 지구는 이처럼 사랑 없는 힘의 비참한 고립과, 우주를 움직이는 사랑의 광채가 공존하는 무대이다. 우리는 그 극명한 대조 사이에서 사랑을 선택함으로써만 비로소 중력을 이기고 빛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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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에게 지구는 추방의 땅이었다. 고향 피렌체를 잃고 이탈리아 각지를 떠도는 망명객의 대지였다. 발붙일 곳 없는 불안한 걸음이 역설적으로 《신곡》이라는 위대한 이정표를 세웠다. 고향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잃었기에 그는 더 넓은 세상을 밟았고, 결핍이 깊었기에 존재의 심연을 더 선명히 보았다. 추방은 단테에게 상처였으나 동시에 집필의 동력이었다. 그는 고향을 잃음으로써 우주를 얻었고, 지상의 거처를 잃음으로써 영원의 문장을 얻었다. 지구는 그에게 정착의 장소는 아니었으나, 진리를 길어 올리는 거대한 서재가 되었다
너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떠나야 할 것이다.
이것이 추방의 활이 먼저 쏘는 화살이다.
너는 타인의 빵이 얼마나 짠지,
그리고 타인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 알게 될 것이다.
— 단테, 『신곡』 천국편 제17곡
단테는 살아서 피렌체의 성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신곡》은 경계를 허물고 그가 사랑했던 땅으로 돌아갔다. 단테라는 이름 또한 지구의 역사 위에 영원히 아로새겨졌다. 고향에서의 추방은 그를 한 도시의 시민에서 인류의 시인으로 변모시켰다.
하늘과 땅이 함께 빚어낸 그의 시는 지상의 재료들로 가득하다. 그는 지구의 처절한 고통을 빌려 지옥을 그렸고, 지구의 간절한 희망을 모아 연옥을 빚었으며, 인간의 언어를 정제하여 천국을 노래했다. 결국 《신곡》은 가장 낮은 곳의 흙에서 가장 높은 곳의 빛까지, 인간의 모든 삶을 담아낸 거대한 지성소다. 단테는 비록 길 위에서 죽었으나, 그의 문장은 지금도 우리가 딛고 선 이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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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일곱 하늘의 구체를 모두 통과한 뒤, 우주의 정점에서 자신이 떠나온 지구를 굽어보았다. 달에서 토성에 이르기까지 광막한 행성들의 질서를 목격한 눈에 비친 지구는 초라할 만큼 작은 점에 불과했다. 그 좁은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아귀다툼과 거창한 야망들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단테는 비로소 선명히 깨달았다. 그때 단테는 웃었다. 그것은 상대를 멸시하는 조소가 아니라, 작고 유한한 것에 매달렸던 자아를 벗어던진 해방의 웃음이었다. 높이 올라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그 맑은 웃음 속에서, 단테는 비로소 지구라는 감옥을 넘어 우주의 시민으로 거듭났다.
나는 눈으로 일곱 개의 모든 구체를 통해 돌아왔다,
그리고 이 지구를 보았다,
그것의 비천한 모습에 내가 미소 지을 만큼.
그리고 나는 그것을 가장 적게 여기는 충고를
가장 좋은 것으로 인정한다.
— 단테, 『신곡』 천국편 제22곡
우리를 그토록 사납게 만드는 작은 타작마당이,
돌아서며, 언덕에서 강어귀까지
전체가 내게 나타났다.
— 단테, 『신곡』 천국편 제22곡
단테의 눈에 비친 지구는 '작은 타작마당'에 불과했다. 우리를 그토록 사납게 만들고, 서로를 할퀴며 권력과 명예를 다투게 했던 그 좁고 먼지 나는 땅.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그곳은 우주의 광막함 속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만큼 미미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단테는 그 보잘것없는 타작마당을 결코 외면하거나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천국의 빛을 가슴에 품은 채 다시 그 소란스러운 땅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썼다.
지구는 작다. 하지만 그 위에서 고통받고, 희망을 품으며, 사랑을 노래하는 인간의 대화는 결코 작지 않다. 단테는 그 작은 타작마당의 언어로 우주의 거대한 질서를 담아냈고, 유한한 삶 속에서 영원을 길어 올렸다. 결국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작은 땅은, 가장 깊은 지옥과 가장 높은 천국이 매일같이 교차하며 위대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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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에게 지구는 보잘것없이 작은 점이었으나, 그 안의 생명력만큼은 우주의 광채와 닮아 있었다. 밤새 서리에 눌려 고개를 숙였다가 아침 태양의 온기에 일제히 잎을 펴는 꽃들, 그것이 그가 발견한 지구의 경이였다. 단테 자신도 고난에 지쳐 쓰러져 있었으나, 베아트리체의 빛과 신성한 진리를 마주하며 그 꽃들처럼 다시 일어섰다.
지상의 미천한 꽃은 단테의 영혼을 설명하는 가장 고결한 비유가 되었다. 그는 멀리 있는 추상적인 언어를 빌려오지 않았다. 우리가 매일 밟고 지나가는 흙 위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언어를 정제하여 천국의 질서를 노래했다. 가장 낮은 곳의 아름다움이 가장 높은 곳의 진리를 증명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결국 천국은 멀리 있는 공간이 아니라, 지구의 평범한 풍경 속에서 발견한 신성의 흔적들로 완성된 세계였다.
밤의 서리에 고개를 숙이고 닫혔던 꽃들이
태양이 그것들을 하얗게 만들면
줄기 위에서 모두 열리며 일어서듯,
나는 지친 내 힘으로 그렇게 했다.
— 단테, 『신곡』 연옥편 제2곡
단테는 지구의 저녁을 알았다. 항해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 시간. 달콤한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한 자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그 시간. 지구의 저녁이 그렇게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아는 자만이 지구를 진정으로 볼 수 있었다. 단테는 지구를 사랑했다. 그래서 지구를 작다고 말할 수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작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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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지구의 저녁이 가진 서글픈 아름다움을 깊이 이해했다. 항해자들이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고, 정든 이들에게 작별을 고한 이들의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부드러워지는 그 시간의 무게를 알았다. 단테에게 지구는 그저 떠나야 할 곳이 아니라, 이토록 애틋한 서정과 그리움이 고여 있는 곳이었다.
지구를 진정으로 볼 수 있는 자는 그 유한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자다. 단테가 지구를 작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구를 누구보다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대상을 작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무시하고 외면할 뿐이다. 작다는 말은 곧 소중하다는 고백이며, 그 작고 연약한 것들이 모여 영원을 이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랑의 언어다. 단테는 그 작은 타작마당을 지극히 사랑했기에, 그곳의 저녁과 꽃과 눈물을 빌려 천국의 노래를 완성했다.
아, 노예가 된 이탈리아여, 슬픔의 숙소여,
큰 폭풍 속의 키잡이 없는 배여,
지방들의 여주인이 아니라 창녀여!
— 단테, 『신곡』 연옥편 제6곡
단테는 타락한 지상을 향해 키잡이 없는 배, 혹은 창녀라는 가혹한 언어를 퍼부었다. 혈통과 가문을 뽐내는 이들의 자랑이 천국의 시선에선 얼마나 덧없고 미미한지 꿰뚫어 본 것이다. 지구의 영광은 빛의 질서 아래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비참한 타락을 직면하고 고발하는 것, 그것이 단테가 병든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처절한 사랑이자 시인의 소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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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에게 지구는 천국을 향한 숭고한 순례의 땅이다. 《신곡》의 첫 문장은 "우리 삶의 여정 한가운데서 길을 잃었다"는 처절한 자각으로 시작된다. 어두운 숲, 그것은 지구 위를 걷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방황이다. 단테는 이 혼란을 숨기지 않고 가장 정직하게 고백했다. 길을 잃었다는 자각이야말로 진정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의 시작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구는 방황의 장소인 동시에, 구원을 향해 첫걸음을 떼는 거룩한 출발지였다.
우리 삶의 여정 한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서 나를 발견했다,
왜냐하면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 단테, 『신곡』 지옥편 제1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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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목격하고 돌아온 단테에게 지구는 이제 집필의 현장이 된다. 그는 현실의 안락함에 타협하지 않고 지구의 가려운 곳을 사정없이 긁어냈다. 권력의 부패와 인간의 위선을 향해 던진 그의 불편한 진실들은 당장 삼키기엔 썼으나, 소화되는 순간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 되었다.
지구 위에서 단테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침묵하지 않고 쓰는 것, 외면하지 않고 말하는 것, 그리고 진실의 손톱으로 시대의 환부를 긁어내는 것이었다. 그것이 고통스러운 타작마당인 지구를 향해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치열한 사랑이었다. 단테는 그렇게 인간의 언어로 천국의 정의를 땅 위에 옮겨 심었다..
만약 하늘과 땅이 손을 댄
이 신성한 시가,
그것이 나를 여러 해 동안 야위게 만든,
나를 아름다운 우리 밖으로 가두는
잔인함을 이긴다면.
— 단테, 『신곡』 천국편 제25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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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역시 그 사랑의 궤도 안에 있다. 작고 사나운 타작마당일지라도, 추방과 타락의 고통이 서린 땅일지라도 결코 그 사랑의 손길을 벗어나지 않는다. 태양과 먼 별들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은 지구 위의 가냘픈 꽃을 피우고, 저녁노을 속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어루만지며, 고뇌하며 써 내려간 시인의 문장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다. 결국 우주의 끝에서 발견한 그 빛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딛고 선 이 흙과 먼지 속에 이미 흐르고 있었다. 지상의 모든 유한한 것들은 그 영원한 사랑 안에서 비로소 제자리를 찾고 의미를 얻는다.
높은 상상력도 여기서 힘을 잃었다.
그러나 이미 내 욕망과 의지는
균일하게 움직이는 바퀴처럼 돌고 있었다,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그 사랑에 의해.
— 단테, 『신곡』 천국편 제33곡
우리를 그토록 사납게 만드는 작은 타작마당이,
돌아서며, 언덕에서 강어귀까지
전체가 내게 나타났다.
— 단테, 『신곡』 천국편 제22곡
단 한 잔의 커피가 식지 않는 온기로 남듯, 드넓은 우주 속 작은 점일 뿐인 나의 삶 또한 그 사랑의 필연적인 궤도 위에서 가장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다.
글
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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