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소속 김대리 Oct 27. 2024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이전글 -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에 이어서)


8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먼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 대학 동기 친구의 도움을 받아 같은 프로젝트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친구로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은 사이라 동료로 지낸 시간보다 개인적인 친구로 알고 지낸 시간이 훨씬 길다. 나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을 좋아해서, 친구와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친구와는 동업도 하지 말라는데, 친구라는 존재와 같이 일을 하는 게 괜찮을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이런 나와 달리 친구는 이미 다른 친구들과 일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첫 프로젝트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앞서 말했듯이 공과 사를 구분하는 편이라 업무 시간에는 동료로, 퇴근하고 나서는 친구로 지내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친구가 먼저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친구가 아니었다면 내가 발품을 팔아서 알아내야 하는 정보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도 처음 프리랜서를 할 때에는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다며, 이미 본인이 알고 있는 것들이니 쉽게 적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프리랜서 생활도, 업무도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이 점은 그때도 고마웠고 지금도 항상 고맙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두 번째 프로젝트까지 같이 하게 되면서 함께 있는 시간과 기간이 길어지게 된다. 우리는 서로 몰랐던 직장 동료에서 시작해서 친해진 케이스가 아니라, 이미 친구로 시작해서 직장 동료가 된 사이이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대화 주제가 된다. 단순 직장 동료라면 서로에게 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양날의 검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친구가 먼저 일을 시작하고 있었고, 나는 한 달 반 정도 늦게 시작했다. 그 한 달 반동안 친구는 나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프로젝트에 대한 카톡을 보냈고, 2~3일에 한 번은 꼭 전화를 걸어서 이러쿵저러쿵 한탄과 하소연을 했다. 그때 기분은 일은 시작하지도 않았고 출퇴근도 안 하고 있는데 마치 내가 그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카톡을 장시간 나누고 전화까지 하고 나면 진이 쭉 빠지고 스트레스받아서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어느 날 단둘이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술도 마신 김에 친구에게 말했다.

'네가 가장 힘들겠지만, 너랑 그런 주제로 밤에 전화하면 나도 스트레스받아서 잠이 안 와.'

'아 그래? 난 전혀 몰랐어.'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머리가 살짝 띵했다. 본인은 나한테 그렇게 하소연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겠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내 입장이나 심정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내가 저 이야기를 한 후로 친구는 밤에 전화하지 않는다. 다만 밤에 전화만 안 할 뿐, 사무실에서, 점심시간, 업무 시간에 틈틈이 하소연하는 것은 똑같다. 매일 그렇게 하소연해도 또 새로운 하소연 거리가 생기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사실 들어보면 거의 90%는 똑같은 내용이다.)


나도 예전에 회사에서 짜증 나는 일이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생기면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아무 생각 없이 짜증 내고 흉봤던 것 같다. 아무나 누가 몇 마디 대충 맞장구 치면 기분이 좀 풀리고, 또 다른 친구가 불평하면 나도 적당히 맞장구쳤던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생각도 나지 않을 그런 에피소드를 가지고 친구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게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되어버리니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타인에게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느낄 감정의 무게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서로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체력과 집중력은 점점 떨어지는데, 누군가 계속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다면 그 부정적인 사건에 너도 나도 잠식되어 버릴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친구가 알게 된다면 섭섭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도 내가 친구가 아닌 단순 직장 동료였다면 이 정도로 나를 매일 괴롭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구 사이가 주는 장점도 크지만 그럴수록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