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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레지나 Dec 21. 2024

Deny, Defend, and Depose

더 이상 기대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세대




최근 미국의 한 범죄자가 화제다.

이름은 루이지 맨지오니, 어느 보험사 ceo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서는 그를 의인으로 추앙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미국의 의료체계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해할 테다. 바로 말도 안 되는 의료비와 받기 까다로운 보험금. 게다가 살해된 ceo의 보험회사는 그중에서도 보험금 신청을 거절하기로 유명하다. 이 회사 덕에 의료비를 내지 못해 죽거나 파산하거나 심지어는 투옥되는 이들까지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도서는 이러한 미국의 보험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delay 하고 환자가 결국 치료를 먼저 시작하면 보험사와 상의 없이 치료를 시작했다는 이유로 보험금 청구를 deny 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를 고용해 방어(defend)한다.



루이지 맨지오니의 범행에 위 도서가 언급되는 이유는 암살 당시 사용한 총알 세 개에 deny, defend, 그리고 ‘depose’가 적혀 있었기 때문인데, depose의 사전적 의미는 ‘탈락시키다’지만 ‘pose’의 의미가 ‘머무르다 ‘ 이므로 ’더 이상 머물러있지 않겠다 ‘의 의미로 사용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말 그대로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제는 기다리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행동한다. 우리는 이 문장을 보고 어느 사건을 떠올릴 수 있다. 제자리를 지키며 기다리라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다가 목숨을 잃었던 수많은 아이들을.


세월호 사건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날을 여전히 또렷이 기억한다. 하필이면 그날은 재난 대피 훈련일이었다. 다 같이 체육관에 모였고 나는 영어 단어를 외우며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휴대폰 사용이 금지되었기에 사건 소식은 듣지 못했다. 교실로 돌아와서야 끔찍한 사건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전원 구출된 줄 알았던 아이들이 사실은 여전히 물속에 있다는 뉴스. 재난 대비 훈련을 위해 휴대폰도 없이 모여 끝나길 기다리던 우리와 물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모여 있던 아이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탄핵 찬성 집회에 2030 여성이 많아 놀랍다는 뉴스가 종종 보인다. 나에게는 별로 놀랍지 않은 소식이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결심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할수록 상황은 나빠지기만 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무능력한 정부의 존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게 할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해당 암살 사건을 혁명의 전조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수많은 어린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탄핵을 외친다. 68년도에 일었던 세계적 사회 운동의 기류가 또다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한국이 미국과 함께 선봉에 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 우리는 거리로 나선다.





참고

1.

https://en.m.wikipedia.org/wiki/Delay,_Deny,_Defend


2.

https://en.m.wikipedia.org/wiki/Luigi_Mangione


3.

https://en.m.wikipedia.org/w/index.php?title=Killing_of_Brian_Thompson&wprov=rar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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