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과 4차원이 만나면?
"나 가수 될 거야!!"
어느 날 뜬금없이 마흔을 갓 넘긴 내가 충주에서 사과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과수원 친구)에게 말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농담과 wish가 반반 섞인 나의 무모한 한마디는 현실이 되었다.
그 후 친구는 20대 시절 우리가 함께 알던 교회 오빠에게 내가 부를 수 있도록 곡을 의뢰했고, 주로 프로들과 작업하는 교회 오빠는 프로에서 한참 먼 나를 위해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을 해주었다. 나는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가수가 되었고 내 친구는 제작자 그리고 교회오빠는 나의 프로듀서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친구를 잘 둔 덕에 난 꿈을 빨리 이루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예기치 않은 시기에 가수가 되었다. 이 방법으로 곡을 발표한 사람은 내가 유일무이할 것이다.
물론 노래를 한곡 발표해서 가수가 맞기도 하고 내가 발표한 곡의 보컬 퀄리티로 보면 아마추어에도 못 미치는 실력이라 가수라고 말하기에는 많이 부끄럽다. 그렇게 난 가수도 아닌 가수가 아닌 것도 아닌 독특한 포지션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 음악적 배경은 초등학교 때 배운 피아노가 다였다. 음악의 길은 걸은 적도 없었으며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도, 타인에 의해 그 재능이 발견된 적도 없었다. 일하는 분야에서 능숙함을 드러낼 나이에 익숙하지도 않고 재능도 없는 일을 시작한다는 건 무모한 일이 맞았다. 그런 나에게 진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지금 이 나이에 굳이 이렇게까지! 그냥 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안 돼?"
이런 반응과 시선도 적지 않았다. 나의 부모님도 새로운 일을 벌이지 말고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 하는 상담에 더 보탬이 되는 행보를 제안하시기도 했다. 늘 새로운 일을 벌이고 마무리는 잘 못하는 딸이 걱정되시지만 이미 다 커서 가정까지 꾸린 딸을 더 이상 적극적으로 말리시지 못하셨다.
하지만 드라마보다 더 다이내믹한 길은 이미 시작되었고, 나는 그 길 위에서 현실에 발맞춰 걷기보다 나의 마음을 따라가 보기로 결정했다. 얼떨결에 곡을 발표하고 나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싱어송라이터로 수정되었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음악으로 표현해 보자.'
그렇게 꿈이 수정된 순간 마음속에 폭죽이 터졌다
'아 이거다..! 이 얼마나 근사한 꿈인가!'
나의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과수원 친구와 나 모두 음악에 대한 지식도 재능도 없었다. 20대 초반 교회에서 만났고 둘 다 음악을 좋아해서 함께 찬양하며 친해졌다. 우리의 박자와 음정은 대체적으로 정확하지 않았고 노래를 세련되게 만들어줄 기교도 없었지만 우리의 노래는 순수하고 깨끗했다. 반짝이지만 팍팍하기도 했던 그 시절, 음악은 우리의 팍팍함은 걷어내고 우리를 더 반짝이게 해 주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음악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다음 쳅터로 나아갔다. 특별한 친구여서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인지 음악으로 이어져서 끈끈함을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과수원 친구는 친하다보다 특별하다가 먼저 떠오른다.
내가 무심코 던진 작은 돌이 나의 친구에게 바위를 옮기게 했고, 나는 이제 산이 만들어지는 기적을 보려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육체는 다소 힘을 잃어 가지만 나는 20대 때 보다 더 어마어마한 열정이 계속 불타고 있다. 내가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과정을, 그 시기를 온몸과 온 마음으로 부딪히며 생긴 변화와 성장들을 나누려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싱어송 라이터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나는 믿음으로 나의 꿈을 이루는 날을 바라본다. 나의 열정과 에너지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며...!
https://www.youtube.com/watch?v=QAU0t9T1ERs&list=RDQAU0t9T1ERs&start_radio=1
나의 첫 번째 곡, 나를 나아가게 만들어준 원동력을 공유한다. 사실 많이 부끄럽다. 지금 들으면 아쉬운 것 투성이고 다시 녹음할까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난 이 시작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나의 기쁨, 절망, 회복, 희망등 많은 것들이 밀려온다. 당당하게 사랑하겠다, 나의 첫 발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