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히스토리의 비하인드 스토리
나를 지금까지 이끈 건 팔할이 꿈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대통령이었다. 남존여비의 사상이 팽배했던 그 시절, 나는 생각했다.
'왜 우리나라에 여자 대통령은 없는 걸까? 내가 한번 해볼까?'
중학교 시절 나의 꿈은 한국 최초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이었다. 학교내외 백일장에서 상을 많이 받게 되자 글을 쓰는 것이 더 재미있어졌고, 잘하는 일로 인식되었다.
'작가가 되어볼까?'란 생각이 들었고
'작가가 된다면 우리나라를 너머 세계 최고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극작가였다. 살아있는(lively 한) 공연이 좋아서 공연 속, 아니 공연의 언저리 어디라도 속하고 싶었다. 순도 100% 꿈을 처음 꾼 것이 이때인 것 같다.
대학교 시절 나의 꿈은 신춘문예 등단이었다. 그 당시 문예창작과를 다녔던 내가 꿀 수 있는 허황되지 않지만 이루기 매우 어려운 꿈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꿈 히스토리를 돌아보니 나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마음과 만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40살이 될 때까지 나의 게으른 손발과 억눌린 마음 탓에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나의 내면 안에서는 명예욕과 성취욕이 늘 극에 달해 있었다. 비교적 소박해지고, 꿈의 범위가 좁아지는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타의 주종을 불허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꿈들을 꾸게 된 밑바탕에는 늘 세계를 바라보고 꿈을 크게 가지라는 엄마의 말도 작용했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던 기질도 있지만, 존재 자체로 인정받지 못한 경험과 칭찬 부족으로 인한 높은 인정 욕구의 지분이 가장 많았음을 사십춘기를 겪으며 알게 되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중학교 시절 주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지인들을 하나둘씩 보자 나도 가고 싶어졌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이민 길에 나를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가족이 생기자 나는 밤낮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제발 나를 보내달라고...! ' 엄마는 끝까지 '절대 안 돼!'를 고수하셨고, 나는 갈 수 없는 현실이 아쉬웠지만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난 유럽이 좋고, 영어를 잘하고 싶으니 영국으로 유학을 갈 거야. 이때가 16살 중 3 때였다. 그로부터 10년 후 나는 영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4년 영국 유학시절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이 글은 쓰는 지금도 꿈꾼다. 더 찬란한 황금기가 도래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