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래할 이유 1

비로소 직면한 나의 진짜 어둠

by 오드리황

대학 졸업 후, 뮤지컬 공부를 하러 떠난 영국에서 심리학을 만났다. 글을 잘 쓰고 싶어 극작과 대신 선택한 심리학이었지만, 심리학을 접하고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어진 난, 작가라는 꿈을 잊을 만큼 심리학에 심취했다. 이상하게 수업 시간에 자꾸 눈물이 났다. 그때는 눈물이 나는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수업을 들으며 나의 쓴 뿌리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쓴 뿌리들이 발견되고 치유되는 과정에서 흘린 눈물임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때 난, 오랜 방황을 마치고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던 것 같다. 그때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학창 시절 나의 부모님은 주어진 역할을 빈틈없이 해내셨고, 무엇보다 가족이 일 순위셨다. FM의 전형인 부모님 아래 태어난 충동적이고 자유분방한 첫째 딸인 나는 부모님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해하셨고, 어렸을 때 똘똘하다는 말을 많이 들은 덕에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쭉 커서 교사나 교수를 하는 것이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다. 그러나 그 틀 안에서 나는 불편하고 답답했다.


신실한 부모님의 사랑이 분명히 나에게 쏟아졌지만 나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한 현실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일은 시작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 비교적 비슷한 성향을 가진 동생들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잘 컸다. 그러나 나는 백조의 모습으로 살게 되었다. 물 위에서는 한없이 평온해 보였지만, 물 밑에서 끊임없이 발을 움직이게 되었다. FM처럼 보여야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자 사람들은 나를 필요로 했고 나는 그렇게 나의 생각을 말하기보다 타인의 생각과 의견을 잘 듣고 잘 따라주는 사람으로 컸다.


하지만 그 인정은 나에게 진짜 만족을 주지 못했다. 나는 인정을 받으면서도 지쳐갔다. 나는 내가 버거운지도 지쳐가는 지도 모르고 살아갔다. 나는 자주 지치고 번아웃을 경험했고 무엇에도 또 누구에게도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했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 중 서로의 다름으로 갈등이 생겼던 어느 날, 나는 남편에서 하소연하듯 말을 했다.


"나는 나의 생각을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크지 않았어. 아빠는 늘 무서웠거든. 그리고 엄마는 심한 저혈압이셔서 몇 번을 쓰러지셨고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 엄마가 죽을까 봐 나는 나의 필요를 표현하지 못하고 꾹꾹 삼켰어"


남편은 그런 지그시 나를 바라보며


"힘들었겠다"


진심 담긴 한마디를 건넸다. 나는 그 말에 펑펑 울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꺼내 본 적 없는 마음을 꺼냈는데, 오랫동안 힘들어하던 그 마음을 남편이 알아주니 오랜 시간 꽉 막힌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필요했구나.'


그렇게 나의 마음을 수용받고 보니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난 아들을 낳고 난 후 아들에게 사랑해 만큼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는 조이가 엄마 아들인 게 너무 좋아.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내가 듣고 싶었던 존재 자체로의 인정을 아들에게 마음껏 선물한다.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아들이기에 충분히 좋다는 마음을 자주 전달한다. 아들도 화답한다


"나는 엄마가 내 엄마라 더~ 좋아."


나의 고백에 아들도 더 큰 사랑으로 화답한다.


나와 부모님의 다른 성향으로 나는 방황했고, 나는 그것이 방황인지도 몰랐다. 그런 나에게 부모님 만큼이나 FM인 남편을 만나게 된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결혼 후 아이도 낳고 상담도 하며 10년을 보냈다. 남편과 맞춰가고 시댁과 맞춰가고 아이와 맞춰갔다. 내 삶에 들어온 이들과 가족이 되어가는 것은 따뜻했지만 힘든 일이기도 했다.


남편과 지난 30년의 차이를 맞추면서, 아이의 감정과 경험을 나의 것과 분리하면서 나는 가장 어두운 곳에 숨어 있었던 내면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나의 내면 아이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가 직면하기도 고통스러웠고, 나의 미숙함을 타인에게 들키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그렇게 30대 후반에 어른이 되어도 엄마가 되어도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온마음으로 체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키워내야 할 자식이 있고, 지켜야 할 가정이 있었기에 나는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며 고통을 온몸으로 맞설 수 있었다. 상황은 폭풍이었고, 나는 바람에 어찌할 수 없는 갈대였다(하지만 알고 있는가? 갈대는 흔들릴 뿐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남편과 결혼 후 나는 남들은 그냥 털어버리고 지나버리는 일들을 온몸으로 곱씹으며 스스로 고통의 굴레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누구와도 적을 만들지 않는 남편의 선한 성품 덕분에 나는 끊어내고 싶은 인연들과 관계를 이어가야 했다. 신기하게도 칭찬받고 싶은 욕구에 늘 목말라 있던 나에게 비판이 강점인 사람을 그토록 집약적으로 만났던 적도 처음이었다. 그들의 비판에 나는 점점 주눅 들어갔고 나만의 빛을 잃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양육에 대한 비판은 나의 자존감을 극적으로 깎아내렸다. 그렇게 작은 일들로 나는 몸이 상할 정도로 고통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일로 고통받고 있지?'


란 질문이 나 스스로에게 던져졌다.


'내가 과하구나 '


그렇게 나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깨달아졌고 나는 서서히 나를 둘러싼 벽을 깨야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시작된 경제적 어려움.....! 월급이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회사를 2년 이상 계속 나가는 남편을 보며 남편에 대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이혼할 생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하자고 협박을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월급이 엄청 밀려 있는 상황에서 싱가포르 가족 여행을 가는 남편 회사 대표님을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짜 없어서 안 주는 게 맞을까?' 나의 분노는 머리를 뚫고 나올 지경인데 남편은 그럴 수도 있다고 회장님을 이해하는 것에 더 분노했다. 나의 들끓는 분노와 남편을 어찌할 수 없는 그 시기에 나는 무엇을 포기할지 결정해야 했다. 남편이 답답했지만 이혼을 하고 싶진 않았고,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결정해야 했다. 남편의 결정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구나. 나는 망가져가는 나 자신을 더 이상 허용할 수 없었고 이 상황과 남편을 놓아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에게 집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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