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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ul 25. 2022

택시기사

"전화 좀 받을게요, 죄송합니다."


이어지는 통화의 내용은 부가세 2천여만 원 소득세 8백여만 원에 대한 것이었다.


"나 일하는 중이니깐 일단 끊자."


얼마간의 정적이 지나고 그는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결혼하셨죠?"


곁에 있는 내 아이를 보고서 택시기사는 물었다.


길 안내 소리의 볼륨이 높았고 마스크 속 웅얼거림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려웠다.


나는 그의 행동에 주목했다. 주고받아야 하는 대화이길 바랐다면, 그러니깐 나에게 어떤 대답을 원했다면 길 안내 음성의 볼륨을 조금 낮추어도 되었을 텐데 그 상태에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채 이어지는 일방적인 대화. 심지어 적어도 손님의 입장으로 앉아있었으나 꽤나 사적이고 민감한 소재의 돈 이야기와 자식의 이야기를 오십 대 후반의 남자는 처음 보는 내게 이어갔다.


무의식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고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의 딸은 서른 두 살, 아들은 서른 살.


내가 아이를 데리고 택시에 오른 순간부터 비슷해 보이는 나이 또래의 모습으로 인하여, 그러나 본인은 알지 못하게, 자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걸려온 어떤 전화.


참지 못하고 뱉어냈던 오랜 이야기들.


딸에게는 신도시에 48평짜리 아파트를 사주었다고, 아들에게도 비슷한 것을 해주었다고.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 룸미러에 비춘 기사의 오른쪽 눈썹이 살짝 위를 향했다. 아버지로서의 뿌듯함 그도 아니면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무엇인지 구분할 순 없었지만 그것은 과시와 자만의 성격을 띄고 있진 않아 보였다. 그저 아버지로서. 또는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과시와 자만이 없는 자식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길 바라는 순간의 바람이 들어갔을지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의 30프로를 이미 다 자식들에게 주었다고. 그런데, 자식이라 함이 너무 지긋지긋하다고. 음주 운전을 한 아들놈은 화원을 들이받아 화원집 주인이 합의금으로 4천만 원을 물어달라고 했다고, 그런데 그 아들 자식은 차만 두고 도망을 쳤더라고. 그렇게 이어지는 딸의 이야기와 그 사위의 이야기. 다시 아들의 이야기. 그로 인해 한 달 사이 7킬로가 빠진 그의 이야기.


그러니깐, 지인(知人)에게는 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


택시에 탄, 자식 또래의 손님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 듣고 있는지 그 여부와 상관없이 마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동안 계속했다. 내리면 남이 되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


때문일까, 덕분일까. 길 안내의 방향대로 가기를 두 번 정도 놓쳐야 했고 들리지 않는 부분은 들리지 않는 대로 두며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많이 아프시겠어요."


나는 한 마디 꺼냈고, 기사는 눈이 붉어졌다.


"말도 못 해요. 죽을 것 같아요. 정말 자식새끼들 때문에."


"우세요."


"네?"


"엉엉 울면 좀 나아 지실 텐데."


"하하, 서른 지나고서는 울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우는 방법도 잊었어요."


택시비는 10600원.


"고마워요."


다섯 살 된 딸에게 나는 작게 말했다.


"저 아저씨 아픈가 봐. 누구 하나 붙잡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저거 아프다고 마음이 보내는 신호인데."


내 아이의 손등에 붙어있는 분홍색 밴드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생채기 하나에도 밴드를 붙여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나는 가끔 궁금하다. 정말 별거 아닌 상처에도.


참 우습지. 그깟 밴드 돈 천원 안 하는데 사다가 붙일 수도 없어. 마음이라는 곳이 돈 때문에 자식 때문에 고장 나면은. 거기는 고장 나면 못 고쳐 아무도. 스스로 늘 가지고 살아.


그렇게 반복하며 함께 살아. 내게는 그래. 그게 그 마음에 난 병이라는 건데. 그러니깐, 처음부터 생채기도 나지 않게 하면은 참 좋은데. 그거 없는 사람 세상에 없어. 아니라하면 그 사람은 모르거나 아는데도 용기가 없어서 못본 척, 모르는 척 사는 거야.


다 저마다 하나씩 있어.


적어도, 그 때마다 아프다고 반창고라도 하나 붙이고 있었다면 좀 나았을까.



" 바퀴  자고   그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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