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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Aug 11. 2022

눈길

눈이 원래 가야 할 길을 잃게 하고 그 방향을 고정케 하는 장면들이 있다.


여름날의 중간 빛을 내는 초록 그 한가운데 손을 잡고 걸어내려 가는 노부부의 뒷모습. 소녀의 몹시 굽은 등이 측은한 듯 한참 동안 소년은 눈의 길을 앞으로 하지 못한다. 자신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음을 핑계로 하여 그 굽은 등이 소년의 이야기는 아님이라 믿어보는 연유는 그의 옆에 굽은 등의 노인은 없고 지켜내야 하는 가느다란 백발의 소녀가 있기 때문이리라.


불그스레한 저녁노을 빛 속에 살갗에 닿는 열기가 답답하고 내쉬는 호흡과 마쉬는 호흡에도 그 갑갑함을 풀어낼 길이 없어 미간을 찌푸린다. 돌아 나오는 모퉁이 쪽에서 언어가 보인다. 손가락의 모양과 손바닥의 방향과 얼굴의 표정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공중으로 쏟아서 부수고 만들어 이어나간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보여내도 두렵지 않은 사람들. 그들로 인해 막혀있던 숨이 잠깐 틔였기 때문일까, 나는 미간에 잡힌 주름을 꾹 누르고 한쪽에만 패인 보조개를 머금어 미소한다.


아이들

비와

노을

청명한 하늘과


허영이 없는 사람들

거만을 모르는 사람들

가난을 알았으나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


좋은 문장과

여름날 진초록의 무성함


버스 맨 뒷 좌석에 앉은 앳된 계절과

내가 좋아하는 거리와 그곳의 사계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시선을 머무르게 한다.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리게 하고 해야 할 일을 잊게 하고 시간의 흐름을 멈춰내고 소리의 진동을 끊어낸다.


그러므로 내 시간은 어쩌면 다른 이들보다 저 뒤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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