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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ar 07. 2022

타인의 경청

타인의 경청      

         

 이름마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름드리의 나무 아래 숨겨져 피할 공간이 되어주는 곳. 편집부 활동을 같이하고 있던 친구는 행동 대장이었다. 집 근처에 봉사활동 하기 좋은 곳이 있다며 나를 이끌었다.    


"어디서 왔어요? 고등학생이구나. 봉사활동 하러 온 거죠?"     

          

 키가 작고 무던했다. 얼룩진 티셔츠와 헝클어진 짧은 머리가 처음 마주한 낯선 타인의 하루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초록빛 아름드리나무와 삐걱거리는 대문 소리, 멈춰있는 공기의 적막함에 사로잡혀 그곳을 제집 드나들듯 하였다.         

 

 계절의 흐름과 상관없이 멈춰있는 시간이 좋았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 양옆으로 펼쳐진 플라타너스의 길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가늠하게 했다. 어떤 날은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이 좋고 또 어떤 날은 커다란 나무 밥상 위에 누워 잠든 타인의 모습이 좋았다. 그런 날에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편지를 써놓고 돌아오곤 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나는 그토록 다정함을 느꼈다. 그때의 나는 그 다정함의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나는 위로가 필요했고 타인은 내게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몸과 마음의 장애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이 타인의 일이었다.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벗이 많았다. 일주일마다 내 이름을 잊어버려 항상 알려주어야 했던 서른 살의 정은씨. 만날 때마다 사는 곳을 물어오는 마흔의 순호씨, 늘 내 손 위로 발그레한 볼을 가져오는 동갑내기의 은지,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며 앉아 있지 못하는 어린 나의 정민이.       


 타인은 마음으로 말하는 이들을 보살폈다. 나는 그들에게 손과 발이 되어주는 것만이 그들을 위함의 전부라 여겼다. 가만가만 지켜보았다. 그녀는 따스한 손으로 이마를 어루만지거나 눈을 마주칠 수 없는 그들과 눈동자를 가까이했다. 그저 '순순하다' 라는 표현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 모습들을 나는 가만가만 지켜보길 즐거워하였다. 그럴 때면 타인은 내게 녹차를 권하거나 프림을 잔뜩 넣은 진한 커피를 권했다.

         

 어느 날은 손에 들린 커피를 한참 쳐다보다 나는 실없이 울기도하였다.     

“어째 울어?” 물어도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면 희고 무던한 그 얼굴에도 금새 눈물이 맺혔다.


“사모님은 왜 우세요?” 물으면

“네가 우니 그렇지.” 하셨다.           


그런 날에는 내 마음을 전부 듣고 있는 것만 같아 창피하기도 하고 주책이구나 싶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타인에게 헤어짐의 인사로 손을 흔들어 보이고 쭉 뻗은 아름드리나무들을 감상하며 걸었다. 문득 아쉬워 돌아보면 한참 지나온 듯한데도 그 자리에 꿈쩍 않고 있던 모습에 소리쳤다.    

       

“어째 가지 않으세요?”

“네가 가야 가지.”          


그럴 때마다 붉은 눈시울이 먼발치에서도 보일까 뒤돌아 달음박질도 하였다. 그런 잔잔한 삶의 추억들이 나의 열일곱과 열여덟, 열아홉을 가득 채웠다.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나서도 나는 그곳으로 가는 발걸음을 즐거워했다. 때로는 마음으로 말하는 이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주로 했던 일은 그저 타인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나의 지난 삶 속에서 있었던 기뻤던 일, 슬펐던 일을 터놓았다. 타인은 나의 진부한 이야기들을 모두 다 들어주었다. 기쁜 일에는 주름진 웃음으로 슬픈 일에는 맑은 눈물로 경청의 신호를 보내왔었다. 어쩌면 나는 그것이 힘이 되어 내가 아픈지도 모르고 나의 시절을 보냈던 것도 같다.   

  

 타인이 내게 느꼈던 그 감정은 ‘연민’과는 다른 것이었다. 살아오며 내가 느꼈던 연민이란, 계단 한 칸과 같았다. 우월한 누군가가 열등한 존재를 바라보며 자신의 상황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안도감 그 후에 찾아오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 바빴던 그들의 일방적인 태도는 삶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무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다. 곁을 준다 한들 마음의 한 칸도 내어주지 않았다. 섣부른 위로보다야 침묵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로는 가만히 있기도 하였다. 물론, 듣는 것조차 서툴러서 입만 다문 채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기 일 수였다. 그렇다 한들, 상대의 처지를 듣고 내 상황에 대한 안도감 따위를 느낄 바에야 듣지 못할 귀가 되는 것이 나으리라.       


하지만 비정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았다. 삶의 고단함과 타인을 마주하게 되면 그동안 버텨왔던 것들이 한순간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함 때문이었으리라.      

더는 전할 나쁜 소식은 없었다. 그것이 마주함의 이유가 되어주었다.


꽃, 한 다발 사들어 3년이 걸리는 거리를 찾아갔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라며 야속하다고,     


"어찌 이리 늦어."라며 탓하기라도 했다면 좋았을까.  

   

"밥은?"이라고 하여 눈가가 얼얼하고  

   

"그럼 커피 줄까?" 물어 이내 나는 울었다.     


 나의 타인은 그날도 나를 모두 듣고 있었다. 내 삶에 가장 아름다운 위로의 순간이었다.


남이 되어 존재하는 누군가가 나의 내면의 모든 감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를 연민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눈물에 눈물로 웃음에 웃음으로 답하여 듣고 있노라 말하였다. 내가 가진 문제에 대하여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아니하였다.


모든 순간 이야기하는 나로 하여금 삶의 짐들이 정리되게 하였고 그저 들어 줄 뿐이었다.  

   

 그래, 그뿐이었다.    

           


이로써 나는 위로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마주함과 공감으로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무언가.   

  

위로란, 타인으로 존재하는 단 한 사람의 경청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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