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반짝 빛나는 Jul 31. 2023

김밥은 언제나 옳다.

김밥에 관한 조금 긴 단상

내 최애 기호식품 몇 가지가 있다.

얼음, 커피, 빵, 그리고 김밥이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에 비용이 많이 안 드는 장점이 있.)


중,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시내가자하면 얼음컵 한잔이면 오케이였고,

대학생, 직장 다닐 때 내게 부탁하는 사람들은 커피 한잔이면 오케이였다.

밥 대신 빵과 커피를 먹고살라면 몇 개월 정도 가능하다.

(앗, 거기에 김밥까지 넣어주면 몇 년도 가능!)

다른 음식은 먹고 나면 종종 '다른 거 먹을걸' 후회할 때가 있지만, 김밥을 먹고 나서는 한 줄이 아쉬워 더 먹고 싶을 뿐이지 다른 음식이 먹고 싶다는 후회 한 적은 없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김밥을  싸는 소풍날

꼬다리를 배불리 먹었던 고소한 향기의 아침을 기억한다.

소풍을 가서 즐거움으로 배가 부른지 김밥을 종종 남겼었는데 일부러 남겨 올 때도 있었다.

돌아와 가방을 정리하고 도시락을 싱크대에 풀기 전 출출해진 배를 달래기 위해 통에 남아있는 반나절 숙성된 김밥 맛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교회나 단체서 나들이 갔다가 남은 김밥을 주면 사양치 않고 받아온다.

돌아와 저녁으로 계란물을 묻혀 구워 먹으면 더 꿀맛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곳을 가게 되면 제일 먼저 찾아보는 가게는 커피숍, 빵집, 김밥집이다.

간혹 새로운 김밥집이 보여 무심코 들어갔다가 아침에 준비한 신선한 재료가 아닌 냉장고에서 봉지 봉지 꺼내 어제 혹은 그 전날 만든 듯 축 쳐진 야채로 만 김밥을 먹기도, 살짝 쉰 김밥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김밥은 언제나 옳다.




이사 와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커피숍, 빵집, 김밥집이었다.

국산 참기름을 쓴다는 모 김밥집은 국산 참기름만 빼면 맛은 같은데(국산 참기름 맛을 잘 모르겠다.)

보통 김밥집 보다 가격이 1500원이나 비싸 패스.

모 김밥집은 땡초 김밥을 주문했는데, 비인기 재료인지 냉장고에서 뒤늦게 꺼낸 신선하지 못한 눅눅하고 축축한 맛이 느껴져 패스.

겨우 가성비 좋은 김밥집을 발견한 행복도 잠시,

즐거운 마음으로 김밥을 사러 갔는데 김밥을  싸던  그 손으로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시는 것이었다.

사장님께 부탁을 드려볼까?

김밥이 너무 맛있고 좋아서 오래 번창하셨으면 좋겠는데, 비록 비닐장갑을 낄지라도 담배 피운 손으로 김밥을 마는 것은 ㅜㅜ(아흑흑)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보았더니 그 김밥집은 폐업을 했다. (또르르)


그렇게 동네 김밥집을 찾지 못하고 아쉬워하던 찰나,

대박 김밥집이 개업을 했다.

그것도 우리 집 바로 건너 상가  1층.

가격은 국산 참기름을 쓴다는 김밥집 가격보다 약 5백 원이 더 비쌌지만 김밥의 스펙은 차원이 달랐다.

(은지) (미채)(초)김밥,

(은지) (치)김밥은 날 설레게 했다.

무엇보다도 한 줄로 아쉬운 적이 없는 김밥은 내겐 처음이었다.

묵은지 덕분에 정말 맛있다.

김밥 위에 생김치를 얹으면 더 환상적이다.

쫄면과 떡볶이는 금상첨화였고

커피와 먹는 맛도 예술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 김밥집을 일주일에 많게 3번 적게 1번은 꼭 가고 있다.

물론 집에서 김밥을 싸 먹기도 하지만 당연히 김밥집 맛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집 김밥은 아이들 입맛 위주의 재료이며 김말이가 시원찮고 칼이 무뎌 썰어놓으면 안 터진 김밥을 찾기가 힘들다.

(괜한 연장 탓을 해 본다.)


김밥은 언제나 옳다.

먹기에도 간편하고

빵이랑 과자로 끼니를 때우려다 김밥을 사 먹으면 내 몸에 조금 덜 미안하다.

(나름 건강식이다. 야채, 참치, 참기름, 쌀밥, 쓰다 보니 5대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완전식품이다. )  

그런 연유로 라면이나 인스턴트, 과자로 대충 한 끼 때우는 것보다 김밥 한 줄을 선호한다.

그렇게 내 몸을 챙겼다는 위안을 삼아 본다.

어떤 재료가 들어가도 다 맛있다.

돈가스나 새우는 물론이고 토마토가 들어가도 맛있다.


간혹 내가 한 밥이 정말 먹기 싫을 땐

김밥 한 줄을 사 와서 몰래 먹으며 저녁을 차린다.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나는 우아하게 앉아있다.

그럼 아이들의 ''엄마는 밥 안 먹어요?''라는 질문에 너희들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웃어준다.


그렇다.

김밥은 혼자 몰래 먹어도 언제나, 옳다!



매거진의 이전글 횡단보도에서 삿대질하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