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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Aug 14. 2023

친정에만 가면 누워있는 딸

여기 있어요, 그 딸


지난주 아이들 방학 겸 휴가로 친정엘 내려갔다.

2일간 친정, 3일간 시댁식구와 여름휴가 계획이었.

아들 둘과 내가 기차를 타고 친정에 있으면,

3일째 남편이 연차 쓰고 우리와 시댁 여행지에 합류키했다.

그런데 여행이 태풍으로 취소되었다.




부모님은 읍, 면, '' 있는 시골 마을에 살고 계신다.

아빠는 당신 고향에 집 짓고 살겠다는 꿈을 기어코 이루셨다.

아빠 집은 우리 집에서 3시간가량 KTX를 타고 소도시에 도착하면 차로 50분쯤 가야 하는 곳이다.

500평 밭에 덩그러니 있는 단층 주황 벽돌집.

15년 전   집을 개척하고 전봇대를 세웠. 

그 후로 뜨문뜨문 다른 집도 생겨났다.

엄마는 KTX가 다니소도시(엄마의 고향)에서 내가 결혼 후 외할머니와 같이 살다가 할머니 천국 가시 퇴직하시며 아빠 계신 시골로 작년귀농했다.

엄마 아빠는 떨어져 살면서 더 애틋한 사이였는데

'졸혼' 하는 노년에 같이 살게 되어 사이가 나빠지심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엄마는 60대 중반에 한국사 1급을 90점 이상으로 합격한 학구파라 퇴직하고 시골에 어찌 사실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이 농사짓는 재미에 고스란히 옮겨갔다.

엄마의 기상은 새벽기도를 다녀오시고 텃밭 인사로 아침을 시작하신다.


명절땐 아빠가 엄마가 계신 곳으로 오셨기에 친정길이 더 멀어졌다 툴툴댔지만, 

아파트만 살던 우리에겐  전원주택은 볼수록  매력적인 이다.


엄마가 내려가시곤 더 깔끔해진 아빠 텃밭


신기하게도 나는,

친정만 가 짐을 풀기도 전에 바닥과 일체가 된다.

시댁에서 명절을 멀쩡히 잘 보내고 씩씩하게 친정에 와서도 그렇다.

남편은 민망해서 나를 일으켜 보기도 했지만,

'울 집에서는  당신이 엄마 좀 도와 드려요.' 하며 남편을 부엌으로 보냈다.  

남편이 가면 엄마는 한사코 말리시 사위를 방으로 들이미신다.

그렇게 종종  남편은 부엌도  방에도 못 들어가 사이 문턱 중간쯤, 안절부절 못 하며 서 있곤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 증세는 백 프로 자의는 아니다.

(자의 반 타의 반?)

친정 문턱을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이끄는 강력한 자기장 힘으로 철썩,  우주의 중력으로 몸이 아래로 달라붙는다.


결혼 전에도 엄마는 토요일 아침엔  밤새 야근하고 늦게까지 집에서도 일하는 딸을 배려해 깨우지 않으셨다.

손님이 오면 이 방은 창고라고 문을 얼른 닫으셨고

내게 방을 치우라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결혼을 한 40이 넘은 막내딸은 여전히 엄마 집에만 오면 병자처럼 누워있다.




이번 휴가도 마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태풍으로 여행이 취소돼서 금요일에 KTX를 타고 집엘 돌아가기로 했다. 친정 체류기간은 3일이 늘어났다.

딸은 당신의 침대에서 꿈쩍도 않고, 아이들은 할머니 6시 새벽기상(시골의 아침은 너무 빠르고 밤은 또 너무  이르다.) 시간에 일어나 온 집을 날아다니며 심심하다, 먹을 것을 달라,  노래를 부른다.

내 엄마이자 외손자의 할머니는 당혹스러움에 동공이 흔들리며 머리엔 지진이 난다.

당신의 침대에서 고장 난 시계처럼 이리저리 각도만 틀고 널브러져 있는 딸에게는 화도 못 내고, 아이들의 요구도 들어줘야 하며 삼시 세 끼나 챙겨야 하는  울 엄마.

태풍 때문에 물놀이도 드라이브도 힘들 과자  마트도 없는  이 마을에, 에너지 넘치는 아이를 만족시키기엔 할머니의 재주로는  부족이다.  

비 온 뒤 서늘해져 산 모기가 넘실대는 시골 아이를 마당으로 내몰지도 못한다.

텃밭 탐험 하자며 아이들과 개구리, 방아깨비 구경하고,  고추랑 가지를 따다 독한 산모기에 얼굴을 두방이나 물려 재빨리 줄행랑치며 후퇴했다.

손자들에게 리모컨 주도권을 뺏긴 엄마는 유일한 낙인 전원일기와 넝쿨당  없었다.

 ㅡ그 당시엔 보지도 않았던 드라마를 몇 년이나 지나서  방송처럼 챙겨보시는 엄마와 아빠ㅡ

방과 TV 거실까지 빼앗긴 엄마는, 냉장고의 식재료는 동이 나고 이틀을 예상한 딸과 손주의 숙식이 삼일이나 더 늘자 근심도 함께 늘었다.

대충 시켜 먹자고 했더 배민 따위 작동하지 않는 마을이라고..!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 상체조차도 움직이지 않는다.

입만 동동 떠서 아들 둘에게 잔소리만 냅따 퍼붓고는 또 대자로 뻗어 널브러져 있다.

도대체 딸은 왜 이러는 걸까?

엄마도 답답하겠지만,  이야기도 한번 들어봐야겠다.

흠, 변명이라도  보자면

정말 이상하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친정에 오면

엄마 얼굴만 보면

그냥, 온몸에 힘이 빠지고 기운이 사라진다.

몸에 있는 뼈와 연골 조직에 나사가  풀린 것 같고

연체동물인양 온몸이 바닥으로 흐물흐물 흘러버린다.

톡톡하게 쌓아 올린 뽀송한 설탕  국자가 불에 닿으면 녹아내려 달큼한 향을 풍기며 눌어붙는 달고나처럼,

수세미로 빡빡 문질러도 자기가 본디 국자인양 떨어져 나갈 수 없다고 강력하게 들러붙어 있는 달고나 자국처럼.


부모님과 인근지역 경치 좋은 곳에 한 끼씩 아이들을 데리고  먹고 차 마시고  드라이브도 하고 산책했다.

하지만 나는  외출 외엔 여전히 엄마 침대에 붙어 각도만 이리저리  틀며 반경 1미터를 벗어나지 않고 5일 동안 침대만 잘 지키고 무사히 집으로 복귀했다.

아빠는 우리를  KTX역에서 내려주시 딸과 외손자들이 떠나 서운하신지 울컥 눈물을 훔치셨지만,

엄마는  '얏호'  하고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일주일 만에 복귀한 집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출근하고 야근하고 퇴근해서 잠만 잤다는 남편의  변명이 무색하게 어쩜   안 닿은 살림이 이렇게나 표가 난 단 말인가?

오일동안 반쯤 풀려 있었던  동공 우리 집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본디의 총기로 돌아왔다.

복귀했다는 강력한 현실자각 타임과 함께 머리를 질끈 묶고 팔을 걷어붙인다.

짐을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청소기를 뽑아 들고 이젠 막내딸이 아닌 주부모드로 변신한다.

오늘 만큼은 아무리 피곤해도 대청소가 필요하다.

필히. 기필코.

전투적으로 집을 치우 냉장고를 훑는다.

일주일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음식물을 재빨리 스캔해서 정리하고 앞베란다에 누워있는 식물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다.

(환기가 안된 건지 햇볕을 못 본 건지 무르거나 썩은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장미 허브가 다 편히 누워 있었다. )


엄마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5일 동안의 완벽한 충전으로 예전보다 더 쌩쌩해진 지금,

육퇴를 하고 평소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금 시각 새벽 3시. 나는 다시 현실로 육아로 책과 글로 돌아왔다.

이 기분이면 새울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의 침대에서 보이는 그림같은 하늘


엄마, 감사해요.

덕분에 딸이 이렇게 잘 쉬고 왔어요.

일주일 동안 너무 힘드셨죠?

당신이 건넨 그 사랑의 기운으로 하루하루를

또 열심히 살아갈게요.

우리 집 놀러 오심 그땐 엄마가 푹 쉬다 가셔요.

사랑해요.!^^ 엄마♡♡


*우리가 다녀간 후 엄마는 이틀 동안  누워 계셨다고 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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