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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옥림 Oct 30. 2021

코로나 홀리데이 5


3학년부 부장교사: 제가 학교에 있어요. 찍어 보내드리겠습니다.
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야호! 학교에 계신다니, 이로서 하나 해결했다.


 교감 선생님은 아직이신가? 혹시 몰라서 다시 전화를 걸어봤다. 애꿎은 신호음만 계속 들리길래 끊었다.


 그 순간 시험 감독관 명단 사진이 5장 도착했다. 좋았어. 미션 성공! 시험 감독관 명단을 확보하였습니다!


 어려운 과제 하나를 달성했다. 화요일부터 살펴보며 1학년 10반 시험 감독관 교사 이름을 추려냈다. 친한 선생님들의 이름도 보였다. 한 분은 본가에 볼 일이 있어서 지방에 간다고 했었다.


나: 협조 부탁드립니다.
      다음의 선생님들이 검사 대상자입니다.
      부장 단톡방에 이 명단을 공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각 부장님께서는 소속 부원들의 검사 실시 여부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말에도 학교를 지키고 계시는 3부장님, 감사합니다! 어쩌면 내가 학교에 나갈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 눈을 반짝이며 보건소에서 보내온 문자 메시지를 다시 한번 훑어봤다. 하하. 어림도 없는 소리. 학생들의 연락처, 주소,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명단을 집에서 어떻게 확보하겠는가? 좌석배치도와 교실 사진은? 꼼짝없이 학교로 가는 수밖에 없다.


 미리 세수를 해둬서 다행이지. 대충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 옷이나 집어 들다가 새로 산 재킷이 보였다. 한 번도 안 입어본 재킷이다. 오늘 같은 날 입기에는 아까울까? 재킷을 들어 몸에 대봤다. 아니야. 오늘 입기 딱 좋지. 기분 전환이 필요해. 흰 티에 재킷을 걸치고 네이비 색의 통이 큰 바지를 입었다.


 아주 잠시 그래도 화장을 하고 갈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화장 안 한 맨 얼굴로 학교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휴일에는 맨 얼굴로 잘만 돌아다니면서 일할 때는 절대 그러질 못 한다. 갓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경험 때문에 그렇다. 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아직은 신규 간호사일 때 맨 얼굴로 출근한 적이 있었다. 선배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내 얼굴을 뜯어보며 표정 없이 말했다. '너 너무 자연인 상태로 온 거 아니니?'


 내 얼굴 상태가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언제나 화장을 했고 옷도 뻣뻣하게 다려 입었다. 단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으로 출근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한 소리할 여지를 주는 것 자체가 싫었다.


 더군다나 출근 준비는 기분 나쁘지만 내 얼굴에 색을 얹어가는 기분은 좋았다. 대학생 때도 화장을 몰랐던 사람인데 병원 일하면서 화장 스킬이 늘었다. 한데 화장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올 줄이야. 화장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더 기분이 나쁠 것만 같았다. 결국 맨 얼굴로 집을 나섰다.


  스타벅스가 좋을까? 아니면 학교 앞 무인 카페? 이런 갑작스러운 휴일 출근에는 내게 자그만 선물이 필요했다. 이럴 때 주로 선택하는 선물은 커피. 스타벅스를 가려면 전철을 타기 전 역 앞에서 테이크 아웃해야 한다. 전철에서 내내 커피 잔을 들고 가야 한다니 싫다. 학교 앞 무인 카페가 무난하다.




 단돈 1,500원의 행복. 얼음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반면 학교로 들어서는 기분은 더러웠다.


 한숨을 쉬고 지긋지긋한 갈색 벽돌 학교 건물을 째려봤다. 그 순간 웬 아저씨가 나타났다. 작업복 차림에 양 손에는 정체 모를 풀을 잔뜩 들고 있었다. 워낙 방과 후나 주말에는 동네 주민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와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거나 한다. 가끔은 쑥을 캐가는 분도 계시고, 살구를 몰래 따가시는 분도 계신다. 근데 왜 저런 알 수 없는 풀을 뜯어 가는 거지?


 "어이!"


 아저씨가 빠른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뭐야? 누구야? 왜 오는 거야? 언덕 위 아무도 없는 휑한 학교에서 수상한 아저씨와 단 둘이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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