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이가 다쳤다.
자꾸 잡고 서려는데 우리 집에는 잡고 설만한 가구가 없다.
소파가 있으면 좋을 텐데.
잡을만한 게 없어서 누워 있는 엄마 몸을 잡고 일어선다.
아니면 좌식 테이블.
좌식 테이블을 잡고 자꾸 일어서는데 불안 불안하다.
이번에도 위태롭게 서 있더니 결국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볼에 멍이 들었다.
하얀 아기 볼에 생긴 멍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아이는 또 그 테이블을 잡고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다.
아이가 다친 이후 남편과 나는 테이블을 버리고 접이식 식탁으로 바꾸기로 했다.
로켓 배송으로 접이식 식탁을 받아두었지만 테이블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나와 다투고 나서는 아침 일찍 나가버리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와 휙 다른 방으로 가 자버린다.
하루종일 아이와 단 둘이 있는 나는 그 테이블을 버릴 수가 없다.
아기띠를 메고 들기엔 무겁다.
넘어지면 잡으려고 아이 뒤에 앉아 손을 뻗어대던 나는 결국 결심한다.
아이에게 장난감을 쥐어주고 테이블 다리를 살펴본다.
꽤 무게가 나가는 테이블이라 접었다 폈다 하는 게 쉽진 않지만 접이식 다리였다.
테이블 밑에 있는 보관장을 떼어내고 다리를 접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이가 잡고 서지 못하도록.
아이는 또 장난감을 내팽개치고 방문을 잡고 불안 불안하게 선다.
얼마 전에 남편 친구 집에서 보고 바로 주문해 둔 가드 테이프를 꺼내든다.
아이가 여태 부딪혔던 곳들, 부딪힐 위험이 있는 곳들을 살펴보며 테이프를 붙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방실방실 웃으며 나를 쫓아다니고 관찰한다.
엄마가 안 하던 행동을 하니 재밌나 보다.
가드 테이프가 푹신푹신하니 부딪혀도 막 아프진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아이가 자면 바로 설거지를 하려고 자기를 기다리는데 도저히 자질 않는다.
요즘 아이는 낮잠도 밤잠도 자지 않으려고 버틴다.
안다, 육아를 하면 좀 내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저기 쌓여 있는 설거지거리가 신경 쓰인다.
분유만 먹일 때는 구석에 젖병을 놓아두면 저녁에 남편이 퇴근 후 설거지를 했다.
그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이유식을 먹이기 시작하니 씻지 못한 아기 식기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바로바로 씻어서 제자리에 넣어버리고 싶다.
아이를 부엌으로 데리고 와 장난감을 쥐어주고 설거지를 하는데 아이가 으앙 우는 소리를 내며 내 바지자락을 잡고 일어선다.
그 장면을 보니 아찔하다.
바지자락만큼 잡고 일어서기 불안한 게 또 있을까.
고무장갑을 벗어버리고 아이를 달래다가 또 아기띠를 꺼내든다.
다른 집은 다 어떻게 하지? 원래 다들 아기띠 하고 설거지를 하나?
아기띠를 한 김에 설거지를 하고 신경 쓰였던 티비장 위에 쌓여있는 먼지를 닦아낸다.
쌓여있던 종이 쪼가리들을 정리하고 보험 청구도 한다.
빨래도 다 돌았기에 건조기로 옮겼는데 물을 비우라고 띵동 띵동 운다.
아기띠를 맨 채로 커다란 물통을 들고 옮기니 뒤뚱뒤뚱 걷게 된다.
아이는 아기띠에 안겨 다리를 파닥파닥 움직이며 음~음~ 소리를 내며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그러다가 나를 올려다보는데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입은 앙 다물고 있다.
그 표정이 사랑스러워 뽀뽀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볼과 이마에 마구 뽀뽀를 하고 말한다. 사랑해. 사랑해.
이만한 사랑이 또 있을까.
아이는 또 자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결국 9시 40분이 되어서야 잠이 든다.
나는 너무 지쳐 얼른 다 정리하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린다.
새벽, 잠결에 아이가 내는 소리에 살짝 눈을 떴는데 아이의 파닥파닥 움직이는 발이 떠올랐다.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듯한 발등에 달린 조그만 발가락들.
피식 웃고 다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