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태어남과 피어남

by 온점

꽃이 폈다. 리시안셔스다. 연분홍과 연노랑이 어스름히 경계를 이루는 색이다. 하늘하늘한 레이스처럼 꽃잎은 나른히 늘어진다. 우습게도 알배추를 가로로 자르면 나오는 단면 같기도 하다.

어머니께서 재미삼아 4900원을 내고 내 사주를 보셨다며 캡처한 사진을 보내왔다. 고집이 세고, 인복이 없고, 어떤 사람과 맞고, 어떤 사람을 피해야 하고 등등. 재미있게도 식탁을 깨끗이 하면 좋다고 적혀 있었다. 마침 H에게 선물한 리시안셔스가 그녀가 가져가야 할 타이밍을 잡지 못해 천천히 시들어가고 있었기에 겸사겸사 다이소에서 화병을 사왔다. 꽃을 꽂기 전에 락스로 소독하면 좋다는 것을 자주 가던 꽃집 사장님께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집에 락스가 없어 주방세제로 꼼꼼히 닦고 5번 물로 헹궜다. 정수한 물을 화병의 3분의 2가량 채우고 꽃의 줄기를 사선으로 잘라서 꽂았다. 3일째에 한 번 물을 갈아주었다. 화병과 꽃은 지금 깨끗한 식탁 위에 있다.

꽃은 한 줄기에 세 송이가 있었다. 줄기를 자르는 과정에서 세 송이가 분리되었고, 유난히 작았던 것은 일찍이 시들기에 놓아줬다. 그리고 가장 큰 줄기에 달려있던 꽃봉우리 하나가 기지개 키듯 천천히 펼쳐졌다. 지금도 펼쳐지고 있다.

생명은 찬란하다. 빛날 찬(燦)에 빛날 란(爛). 빛나고 또 빛난다. 눈부시지만 눈이 아프지 않은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좋다. 언제까지라도 바라보고 싶다. 생명을 관찰하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지만 지금은 해석과 분해가 아닌 바라봄이 좋다. 응시, 그리고 감상. 그 사이의 바라봄으로, 펼쳐지려는 꽃잎이 부담스럽지 않게.

H의 5살난 조카는 장래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꿈이라고 한다. 그녀는 벌써 그녀의 삶보다 5배는 더 살아온 나보다 꼼꼼히 세안을 할 줄 안다. 종종 H의 화장에 참여하곤 하는데, 그 솜씨에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4년의 생애만에 ‘무언가 되고 싶다’하는 삶의 방향성을 획득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 대견하면서도 스스로가 부끄럽다. 다섯 살의 나는 축구선수와 과학자를 동시에 꿈꿨던 것 같은데 둘 중 어떤 것도 그녀처럼 잘하지 못했다. 만개하듯 찬란하다.

그녀에게 두번째 동생이 오늘 8시 반에 세상에 나왔다. 3.5킬로그램의 건강한 몸무게로 첫 목소리를 냈다.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난 그가 어떻게 찬란하게 우는지를 짧은 영상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고맙게도 H는 나에게 그 축복을 나눠줬다. 그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아픔과, 슬픔과, 기쁨과, 찬란함을 포함한 세상의 일부로서 두 팔 벌려 그를 환영하고 싶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태어남을 저주라고 생각해오는 것을 보았고, 스스로 그렇게 확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지옥이 있고, 하나의 지옥이 더 늘어난 것임에도 기쁘다. 만개하듯 찬란한 생명에 기뻐할 수 있는 내가 되어 기쁘다.

H의 조카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 그녀가 울지 않았음을 이모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눈물이 참 많다는 그녀가 울지 않았음이 대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세상의 눈물 총량은 보존되는 것인가. 그럼에도 눈물의 결이 다르기에 세상이 한층 더 나아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개하듯 찬란하다.

개화는 기쁜 일이다. 특히 건강히 피어났다면 그렇다. 세상의 일원으로서 기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개화에게 축복이 있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2022.10.2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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