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6
사방이 종이벽이었다. 하얀 것들이 눈처럼 흩날리다 벽을 이루고, 그 벽들이 겹겹이 접히며 미로가 되었다.
종이마다 글자가 적혀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잉크가 번져 물결처럼 흘렀다. 어떤 건 숫자, 어떤 건 이름 같았지만, 모두 낯설고 불분명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종이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발밑의 종이가 찢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종이에 베일 것 같은 공포가, 이미 베인 상처처럼 몰려왔다. 손끝, 발끝, 눈꺼풀까지 종이의 날이 스치며 아릿하게 저렸다.
곧, 종이 폭포가 쏟아져 내 몸을 삼켰다. 얼굴이 가려지고, 호흡이 잘려나갔다. 수천 개의 이름이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 위에 내려앉았다.
그때, 바닥에 단 한 장이 고요히 빛났다. 그 종이만은 젖지도, 찢어지지도 않았다. 글씨는 번지지 않았고, 심장처럼 또렷이 뛰고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아침, EMR 화면이 빽빽하게 열렸다. 검사 수치와 이름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순간 모두 흔들려 파도처럼 출렁여 보였다.
환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장님, 이번에 이렇게 하기로 했잖아요…" 나는 화면에서 그의 기록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대로 해봅시다."
수많은 기록 속에서도, 지금 내 앞의 목소리만은 또렷했다.
종이에 베인 상처와 심장처럼 뛰는 글씨. 수천 개의 이름 속, 단 하나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