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5
거리는 평범해 보였지만, 건물들이 호흡했다. 벽마다 미세한 숨결이 번지고, 하늘에는 0과 1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발밑은 투명해, 거꾸로 매달린 도시가 그 아래에서 뒤집힌 채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매끈했다. 눈도 입도 없는 표면.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꿰뚫었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만이 유일한 증거처럼 남아 있었다.
"저기, 얼굴 있는 놈."
목소리는 합창처럼 울렸다. 나는 달렸다.
계단을 뛰어올라 문을 열자 바다가 있었다. 그러나 파도는 물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코드들이 파도처럼 부서져 발끝에 달라붙었다. 90도로 세워진 바다 벽 위를 달릴 때, 또 다른 내가 나타났다. 픽셀로 깜빡이는 얼굴. 현실보다 매끈한, 그러나 체온 없는 나.
"여기서 나가면 또 아플 거야."
그가 속삭였다. 손가락은 픽셀 단위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남아. 얼굴을 지우면 상처도 사라진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야 해. 그게 내 삶이니까."
우리는 부딪쳤다. 내 팔이 깨져 픽셀이 되어 날렸다. 하늘 위에 EXIT라는 글자가 빛났다. 나는 뛰어올랐다. 그가 발목을 잡았다.
"현실의 너는 도망치지만, 난 여기 남는다."
그의 눈동자는 텅 비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나는 발을 뿌리치며 EXIT로 몸을 던졌다. 모든 게 0으로 무너졌다.
새벽 네 시. 식은땀에 젖어 깼다. 핸드폰 화면에 학회 메일이 떴다. 「메타버스에서 만나는 미래 의료」. 꿈과 똑같은 단어였다. 잠시 웃음이 났다.
아침.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그의 화상외과, 나의 류마티스내과. 같은 방향, 다른 목적지. 침묵 속에서 걷는 동안, 공기마저 픽셀처럼 쪼개져 있었다.
진료실. 환자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선생님, 인터넷에서 이 약이 좋다고 하던데요."
화면은 화려했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였다.
"아직 근거 없는 얘기예요.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요."
환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현실에서, 나는 EXIT를 제시할 수 없었다.
점심시간, 학회 세미나에 접속했다. 아바타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젊어 보였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중년의 의사들이었을 것이다.
"AI가 진단을 돕습니다." "VR로 수술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발표들이 이어졌다. 누군가 물었다.
"AI가 환자와의 공감도 학습할 수 있나요?"
잠시 침묵. 발표자가 머뭇거렸다. 나는 화면을 껐다. 충분히 들었다.
밤, 창밖의 불빛들이 0과 1처럼 깜빡였다. 그러나 그 불빛은 따뜻했다. 코드가 아니라 체온이었다.
우리는 매일, 픽셀로 쪼개졌다가 다시 붙는다. 복원은 체온이 남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