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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Jun 08. 2024

생략, 자유

다 그리지 않아도 충분해

눈에 보이는 것이 너무 많다

스마트폰 속에도

티비 속에도

온갖 화려하고 매력적이고 빠른 것들이 가득하다


감각에 지쳐 공백과 자연으로 떠나도

또 보이는 것이 너무 많다

하늘과 바다

별과 달

꽃과 나무

한아름 가득한 들풀과 흙내음

비오는 날의 평화

눈오는 날의 흥분.


느끼고 즐겨야 할 것이 많은 것은

분명히 행복한 일인데

좋은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 하나의 진수를 제대로 맛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또는

이 많은 좋은 것 중에

내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거대한 좋음을

좋다고 정의내린 구석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릴 때도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 풍경과 순간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싶은 것이

오랜 기간

나의 동기와 의욕이었다.

캔버스를 꽉 채워서

이 멋진 순간을 담아야지.


하지만 있는 그대로

이 순간을 담고 싶다면

찰칵.

사진을 찍으면 될 일이 아닐까?


굳이 애써 그림으로 그려야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러다 앙리 마티스 전을 가게 되었다.

시력이 나빠지고 손도 말을 잘 듣지 않게 된 후

마티스가 그린 굵은 선의 초상들과

가위로 잘라 낸 조각의 연결.

물론 그 전에도 섬세하진 않고

작품을 지배하는 중심 이미지가 늘 확실했다.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닌

작가의 마음 속을 그린 것 같은

중요한 것은 크게

주변의 것들은 작게


그림을 보면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두툼한 선의 초상들은

정말 간단한데도 아름다웠다.




한 번 마티스를 따라 해 보자.

나도 터치 한 번으로

나의 감상을 표현해보자.


동그라미와 몇 개 선 뿐이니

금방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대충 그린듯한 그림들도

내가 해보니 너무 너무 어려웠다.


많은 선이 없으니

단 한 가닥의 선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했다.


복잡한 디테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훨씬 백만배 쉬웠다.



수십 수백개의 선과 작은 묘사 중

어떤 선과 어떤 부분을 살리고 싶은지


어떤 걸 취하고

어떤 걸 버릴지

어떤 걸 표현하고

어떤 걸 생략할지


두통을 유발하는 작업이었다.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놓치기 싫은데.




- 선생님, 저 단순해지기가 너무 어려워요.

   깔끔하고 명쾌한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이거 보세요.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애매하고 지저분해졌어요.


- 원래 그래요. 텅 빈 그림이 훨씬 어렵죠.

    너무 많이 보지 말고, 

    가장 좋은 부분만 과감하게 표현해보세요.



예술의 영역이고

심지어 취미예술의 영역이라도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그리고 또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날 나의 인상을 담아낸 작품이 나왔다.


참 마음에 드는 몇 점.


크로키와 스케치

선으로 표현하는 마음.


오늘도 한 번 목탄펜을 들어봐야지!



출근길 표정
혼자 쉬해요
면도 구경
낮잠 유모차 체크
형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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