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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진호 Nov 09. 2021

프롤로그


춥고 어두운,

스스로 고립된 채 쾡한 눈을 가진

짐승 한마리 사는

쓸쓸한 우리 안


시간은 멈춘 지 오래

기억도 추억도 지워진 글자처럼

희미해그곳


고압선을 튕기며 지나가는

윙윙 바람소리만 멀리서 들리는

춥고 어두운

쓸쓸한 우리 안


피어난다 혹은 날아온다

어떤 땐 하나씩

어떤 땐 폭포처럼


어떤 땐 모두 그물을 빠져나가버리고

어떤 땐 몇 개 걸려

은빛 비늘 파닥이는 물고기처럼

반짝이며 겨우 남아있을 때


건져서 포를 뜬다.


수식도 없고 장식도 없다

나무 도마에 처연히 펼쳐진

한점의 푸른 사시미처럼


그 오랜 유영의 끝.

빠져나가고 사라져버리고

잊혀지고 지워져버린

어떤 봄 날의

현기증 나는 아지랭이 아래

그렇게 남는 몇개의 단어들

상처들,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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