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여기 있어요.
화를 잘 내는 아빠가 싫었다. 그냥 좋게 말해도 알아들을 일들이었다. 나의 잘못을 보기 보다 화를 내는 아빠를 보았다. 그리하여 40대인 딸과 70대인 아빠는 아직도 사이가 좋지 못하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 남는 건 관계뿐이란 생각을 많이 하는건 그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방학 첫날, 둘째녀석과 첫기록을 멋지게 달성했다. 올림픽중계에선 금메달 달성을 토해내는 상황에서 말이다.
-엄마, 제가 지금 무슨 생각하면서 엄마 말을 듣고 있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요?
-말해.
-고등학생이 되어 힘이 세지면 엄마를 때려버릴 거예요.
-뭐!! 이 녀석이, 그러니까 지금 엄마가 너를 가르치는 거잖아. 어른에게, 부모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너의 말버릇때문에 엄마가 이렇게 나무라고 있잖아!
아침의 시작은 무난했다. 어젯밤 늦게까지 여자단체전 양궁을 가슴 졸이며 봤던 큰 아이와 우리 부부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잠자리에 늦게 들었다. 둘째에게 이 순간을 영상으로 꼭 전하리란 기대감을 안고.
쉬는 날이면 식구들 보다 1-2시간 먼저 일어나 자유시간을 만끽하는 둘째 아이는 이제 10살이다. 좋아하는 책을 1-2시간 읽고 나면 게임방송이나 유투브를 보며 식구들이 일어날 때까지 시간을 채운다. 그렇게 주말만 기다리던 아이는 드디어 방학을 맞이했다. 책을 읽고 게임방송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리모컨을 확 빼앗아 들며 말한다.
-올림픽 기간에는 올림픽을 봐야지! 매일 보는 게임방송이나 유투브 말고!!
-아이, 씨!
그 길로 둘째 아이는 안방으로 끌려 들어와 30분간 지옥같은 시간을 버텼다. 부모에게 욕을 하는 아이의 낮은 도덕성이 밖에서는 어떤 행실로 연결되는지, 엄마는 반드시 책임감을 가지고 말버릇을 고쳐 놓아야한다는 식의 질리도록 들은 그 말들...
그리고는 돌아온 말이었다. 힘이 세지면 엄마를 때릴 수 있다는 위안의 길로 자신의 힘든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엄마는 임진왜란의 왜군, 병자호란의 청나라 같은 사람이예요. 최소한의 주의나 경고도 없이 약한 상태의 상대에게 기습공격이나 하는 그런 사람이라고요!
찰떡같은 비유에 현웃이 터지고 말았다. 하지만 둘째 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다. 안방으로 데려오면 너무나 무서운 표정의 엄마가 말을 한다고, 그럴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서러움을 토해냈다.
우리의 대화는 잘 마무리되었다. 적어도 3번의 주의를 주고, 자신의 말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그 자리에서 얘기해 달라는 발전적인 메세지도 내놓았다. 엄마가 노력해 보겠다며 서로를 와락 껴안았다.
그제서야 웃으며 TV 앞에 앉은 아이는 형이랑 희희낙낙 웃고 있지만, 엄마는 미안한 마음이 계속 널뛴다. 나딴에는 유아기부터 고집이 완강하고 예민했던 아이라 제대로된 훈육 시기에는 사실 감정 수용에 초점을 두었다. 이제는 10살, 지금 하지 않으면 사춘기에 모두가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최소한의 어른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데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오늘처럼 오버스럽게 꼬여버린 날의 반복이겠지만 그 또한 부모로써 나의 역할이라 확신해 왔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나도 아빠랑 똑같은 부모인게다. 자기 확신에 빠진 자가 화를 내서라도 가르칠건 가르치고 말겠다며 눈을 추켜 뜨고 옳은 소리를 반복하며 아이를 궁지로 몰아 세우고 있었다. 아빠와 같아지는 게 두려워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일뿐. 포장지만 다르지 내용물은 같은 소포이다. 그 소포를 받아든 아이는 하나같이 두려움을 느끼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최면을 건다.
내가 크기만 해봐라. 가만히 안둘거야.
알고 보면 우리 아이들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예의바른 아이들이다. 알길이야 없으니 한 두가지 경험으로 그리 믿고 있다. 학교지키미 선생님은 둘째 아이를 데려다 주는 나를 보시곤 학교에서 인사를 가장 잘 하는 아이라고 했고, 아파트 경비종사자님은 항상 일부러 들러 인사를 하는 아이들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그런 아이들이 어른을 함부로 대했다기 보다는, 세상 가장 편한 엄마이기에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고 인지해야 한다. 부정적 강화로 아이를 대해 삐뚤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