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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미 Nov 04. 2021

공격적 투자의 민낯

Q3. 돈을 들이부었는데 결과는 없어요. 미술 유학이라고 다를까요?




유학 준비를 하다가 도중에 그만두는 사례는 적지 않다. 진학 후 휴학을 하거나 포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학교에 지원하고 결과를 얻어내는 일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워서라기 보다 작업이라는 과정에서 휘청거리다 픽, 쓰러진다. 나를 넘어서는 것의 연속, 스스로의 부족함을 확인하고 그것을 털어내는 일, 그러면서도 바람 잘 드는 날 산책하듯 콧노래를 부르는 시간은 챙기는 것. 쉽지 않지만 못지않은 즐거움이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미술 하는 자식에게 투자하는 일은 세속적인 문법으로 이야기하자면 주관적인 평가에 좌우되며 불확실하기까지 한 고위험 저수익의 투자인 셈이다. 또 A가 유학 준비를 하다 중도에 하차를 하는 건 투자처가 영업 중지를 하는 것과 같다.


차라리 삼성전자가 떡락을 했다면 ‘언젠가 오르겠지’ 하며 묻어둘 일이다. 반면 미술 하는 자식에 대한 지원은 투자 가치의 증명 자체가 어렵고(딱히 들여다보지 않음), 얼마를 들였든 공격적이고 고위험이라 느꼈을 거다. 어떤 분야와 비교해도 들이는 액수에서 뒤처지지 않으니 의지와는 별개로 공격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긴 하다.











아직 상장이 안된 어떤 지망생 A를 든든히 믿어주지 않는 부모에게 유학 준비는 고위험의 투자에 불과하다. A의 움직임은 뭐가 됐든 다 돈으로 셈을 하기 일쑤다. 쉬고 싶다는 목소리의 떨림 같은 건 애초에 인지조차 되지 않는다. 네가 최선을 다한 게 맞느냐고 쏘아붙이는 눈빛이 가닿는 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 역시 보고 싶지 않은 변수로밖에 읽히지 않겠지.


따라서 둔치에서 하던 작업을 멈춘다는 건 얼마를 환불받아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대화다. 물론 대화의 시작은 늘 고상하다. 존중이 배제된 눈빛이지만 불쑥 운영진 둘에게 ‘선생’이라는 감투를 씌우고는 ‘우리 A’의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질문의 본질이 드러난다.




이제까지의 투자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었으며 언젠가 투자를 재개하게 된다면 그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믿어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그때는 또 돈을 얼마나 더 들이부어야 하며 투자 이상의 가치를 돌려받기까지 얼마 큼의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지, 또 주관적인 평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투자처의 선택은 시작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아직 만기일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회사가 사라져 버리면 난 이제까지 뭘 한 것인지 등.


온몸을 파르르 떨며 화를 감추지 않은 학부모 앞에서 내 표정 역시 근육이 길을 내는 그대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슬픈 것은 여기서 A는 어떤 특정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대개의 학부모들의 자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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