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5 한국 학교랑 해외 학교가 뭐가 그렇게 달라요?
한국 미술 대학교랑 해외 미술 대학교랑 뭐가 그렇게 다르냐는 질문을 꽤 자주 듣는다. 유학을 갈지 한국에 있는 대학원에 갈지 고민이라는.
사실 학교의 시스템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같은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교수진의 가치관, 같은 인간으로서 학생들과 교류하는 방식은 다르다.
일단 상담 오는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교수님께서 이렇게 하라 하셔서’
‘교수님한테 컨펌받았어요’
교수님, 교수님, 교수님, 그놈의 교수님!!!
핸들은 놓쳤고 그렇다고 (당연히) 교수님이 대신 핸들을 잡은 것도 아닌, 어디 가서 들이받고 박살 날 날을 받아둔 미대의 흔한 영혼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의 미술 대학교는 진작에 고인 물을 처리할 마음이 없다. 낡은 이야기, 정답, 눈속임, 굳히기.
자기 작업을 하기에도 분주한 교수들은 수업이나 학생들 개개인을 위해 시간이나 에너지를 투자할 여력이 없다. 자기들이 아는 선에서 가장 쉽게 완성하는 법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학교 생활에 대한 회의가 가득하거나 멋모르고 도태된다. 나름대로 모범적으로 선생님의 말을 잘 들은 ‘착한 학생’들의 경우 더 그렇고, 그 마저에도 편승하지 못한 친구들은 그냥 낙오자가 된다. 우리나라의 기성 가치(?)는 이렇듯 창작하려고 하는 학생들을 대놓고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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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뉴욕의 한 미술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교수들이 바쁜 건 똑같다. 특히 내가 다닌 학교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교수진으로 있었기 때문에 교수로서의 역할은 뒷전인 불성실한 선생님들도 있었다. 미국이라고, 뉴욕이라고 다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것은 학생과 교수가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다. 이미 한껏 뽐내본 선생님들이 삶을 꾸리는 방식,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미지를 읽는 것에 대해 배웠다.
또 무게 중심이 선생님의 권위가 아닌 학생들의 주관에 있는 게 건강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 보니 중심이 휘청휘청하는 진통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성장할 수 있다. 선생님들은 구체적으로 제안하지만 숙제는 내주지 않고, 뜨겁게 크리틱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선생님은 좋은 동반자였다. 자유와 독립된 영역이 보장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든든한 안전지대였다. 나를 속박하는 건 없으나 내가 달려가 도움을 구할 곳은 많았고, 그렇게 자유로웠다.
한 선생님은 작업으로 조잘댈 수 있도록 적당한 보폭의 징검다리를 놓아주었다. 맨해튼 로워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 LES)에 있는 그녀의 작업실은 50년째 월세가 동결돼 한 달에 20만 원 남짓을 내고 있었다. 고정된 월세를 제외한 그녀의 모든 것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마틴 스콜세이지의 “도시인처럼”을 보다 문득 그녀와 산책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녀의 뉴욕은 프랜 레보위츠(Fran Lebowitz)가 이야기하는 7-80년대 뉴욕과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뉴욕이 피어오르던 때의 생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따듯했고 시니컬하기보다는 크리티컬했다.
찌르면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다른 선생님은 따박따박 작업에서 보이는 그대로를 하나하나 가장 객관적으로 읽어주곤 했는데, 이미지에서 읽히길 바랐던 너머의 것이 타인의 목소리로 들려올 때 그 가슴 뭉클함은 잊히지가 않는다. 내가 담고자 한 것은 한없이 작고 하찮았지만(담고자 했다 하기에도 내가 무언가에 담기길 원했던 것 같다.) 그 기저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읽어주던 담백함이 위로가 되었다. 가장 차갑고 객관적인 크리틱이 가장 정확하면서도 따듯하기까지 했던 그 첫 경험이 참 좋았다. 창작물로 소통하는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증폭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힘.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달려가 서로를 꽉 안아주던 선생님도 있었다. 단단하고 따듯하게 늙은 그가 크리틱을 주고 나가면 한동안 작업실에서 혼자 둥실둥실 떠다녔다. 다른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솔루션을 준 적은 거의 없었지만 늘 설렘을 주고 떠났다. 여전히 대책이 없었지만 막막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된 지금 그 선생님이 나눠주던 온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헤매고 있는 대학원생 정우미에게 무슨 말을 건넸길래 그토록 설레었는지 궁금해할수록 더 잊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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