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7 유학 생활 하는 동안 외로울까 봐 걱정돼요
타지 생활이 외로울까 봐 걱정이라는 고민. 모두가 외로움을 저 나름의 방식으로 대하게 될 테고 딱히 특별할 건 없다. 이건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기보다 오늘날의 푸념.
사실 유학 생활, 특히 미대 생활은 외로울 틈 없이 바쁘다. 작업실에서는 작업하느라 바쁘고 집에 돌아와서는 쉬느라 바쁘니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래서 더 외로웠던 것 같기도 하지만, 것도 순전히 지금 와서 하는 말이다. 돌이켜보니 생기는 시간적 거리감에 ‘잘 있구나, 우뚝, 혼자서’ 하는 생각이 ‘멀리서 잘도 지내네’에서 '외롭겠다'로, 그냥 넘겨짚는 거다.
대부분 집에 가고 없는 조용한 밤, 내 작업실 바닥에는 친구들이 앉아있었다. 라디오를 틀어놓은 것처럼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통하는 대화일 때도 많았지만 나태하게 서로를 마주하는 시간도 잦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관계를 지각하는 이상한 시간이었다. 나는 말하고 너는 거기 있어, 나 외로우니까, 식의.
뻔한 이야기지만 뉴욕은 자극으로 가득하다. 뉴요커들은 매력적인 것들은 빠르게 흡수하고 다른 것들은 적당히 쳐내는 데 능숙하다. 울타리 안을 자기의 모양대로 꾸미고 관리하고, 또 무신경하도록 훈련되어있다. 자기에게 햇볕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코앞에 디밀어도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은 것처럼.
주변 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해야 하는 상황도 무지하게 잦다! 캣 콜링 천지니 눅눅한 눈빛이라도 느껴지면 한번 매섭게 대꾸해주거나, 음.. 것도 한두 번이지 그냥 모른 척 빠른 걸음. 외롭다고 누구라도 좋으니 마다하지 않고 환영하는 시스템은 위험하다. 지하철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크루들도 관광할 땐 좋았는데 맨날 마주치다 보면 '아 미안, 나 내 시간 필요해'. 눈꺼풀은 점점 두툼하고 차가워진다.
1년에 한두 번은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갔다. 할아버지는 젊을 때부터 미국에 오는 작가들을 응원해주곤 했는데 늙어서는 나와 내 동생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주셨다. 넘치게 베풀어주시고 낡지 않는 농담으로 웃기기까지 해 주셨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 반가움과 편안함에 그 집에 가면 늘 잠이 왔다. 우린 배가 아플 때까지 먹었고 맨해튼으로 돌아오는 기차는 늘 추웠다. 할아버지의 티라미수는 세상에서 가장 촉촉했는데 이젠 레시피만 남아있다.
외롭지만 고립되지 않은 날들이 많았다. 안팎으로 새로운 모습을 마주했다. 서로의 쓸쓸한 호흡 말고는 이름도 뭣도 모르는 네 사람의 카풀은 늘 조용했다, 누군가 괴성을 지른 직후인 것처럼.
어떤 날엔 식당 종업원과 가장 친했다. 가장 짙은 시간을 통과하는 때에 별말 없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뉴욕에 있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했다. 맨해튼의 초당골에 있다는 말에 그날의 쭈그러진 마음이 상기되었다. 제대로 눈도 못 마주쳐본 종업원의 친절함을 오래 기억해야지 했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지 5년이 지나서야 떠올리게 되었다. 더 이상 그 묵직한 서러움이 없는 거 보면 그때가 ‘더’ 외로웠긴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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