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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5월의 어느 하루

Written by 리나

2030년 5월 6일 월요일. 아침 9시에 맞춰 우리 집 가사 도우미 로봇이 나를 깨우러 왔다. 일어나기는 했지만 오늘은 출근하지 않는 날이다. 주 4일 근무 중인 회사에 다니는 나는 쉬는 월요일인 오늘 미뤄 놓았던 집안일과 장보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었던 팬데믹이 지난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가 지난 지금, 2026년 엔데믹 선언 이후 4년 만에 세 번째 팬데믹을 경험하고 있다. 첫 번째 팬데믹을 불러온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풍토병이 되어 요즘도 가끔 감염자를 만든다. 물론 백신과 치료제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죽거나 크게 앓는 사람은 더 이상 없지만, 언제 어떻게 변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낼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염려되기는 한다. 하지만 이번 팬데믹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는 다른, 얼마 전 모두 녹아 지구상에서 없어져 버린 북극 빙하 안에서, 수백 년 전에 빙하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가 세상에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수백 년의 전에 탄생했던 바이러스에 대해 지금의 인류가 갖고 있는 지식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 그래서 이 세 번째 팬데믹에 대한 연구는 좀처럼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러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글쎄, 지금까지 두 번의 팬데믹을 겪어 낸 인간의 능력을 다시 한번 믿어 보아야 할까. 아무튼 도우미 로봇에게 이것저것 팬데믹과 백신에 대해서 물어봤지만 밤 사이에 들어온 새로운 소식은 아직 없다.


팬데믹 덕에 거의 모든 것을 집 안에서 해결하고 있다. 사실 팬데믹이 아니라도 더위와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외출이 잦지는 않다. 몇 년 전부터 5월은 더 이상 봄이 아닌 완전한 여름이 되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종잡기 어려운 날씨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의 5월은 여름은 여름인데 수시로 스콜성 비가 쏟아졌다가 거센 바람이 불었다가 금방 또 찔 듯한 땡볕 더위가 오는, 예상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대비하기도 어려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꽤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5월에는 막 피기 시작한 장미나 아카시아를 포함해서 황매화나 황철쭉 같은 들에 피는 봄꽃 나들이하러 근처 공원이랑 산에 놀러도 갔었는데.. 이제 그런 꽃들은 2,3월 정도에나 잠깐 피고 지는 정도이다. 주변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 옛날의 봄꽃들도 많다. 도우미 로봇에게 예전에 내가 봤던 봄꽃 사진들이나 좀 찾아달라고 할까. 갑자기 향수에 젖으려고 하는 이 분위기 뭐임.


종잡기 어려운 날씨 덕분에 볼 수 없는 것은 예전의 그 봄꽃뿐만은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던 참나물, 돌나물, 방풍나물 같은 나물들은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 보기도 너무 어렵고 가끔 판매하는 곳을 발견한다 해도 손을 덜덜 떨며 결재 클릭을 해야 할 정도로 너무 비싸다. 여러 나물 넣고 달걀 얹어 고추장과 참기름에 비벼 먹던 산나물 비빔밥의 맛이 너무 생각날 때에는 옛날에 많이 좀 먹어둘 걸 하는 정말 부질없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나물뿐이랴.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요리할 때 부담 없이 사용했던 배추, 무, 감자와 같은 채소들은 이제 일주일에 한번 정도만 겨우 사용한다.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얘네들을 재배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재배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단다. 식품 공장에서 북한이나 러시아에서 배추와 무를 대량으로 수입해서 만든 김치를 사 먹는 것도 이제는 자연스럽다. 한국은 이제 아열대 지역이 되었기 때문에 여주, 오크라, 얌빈과 같은 채소로 반찬도 만들고 국도 끓여 먹어야 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처음에 정말 적응하기 어려웠던 맛의 오크라도 지금은 볶음밥 재료로도, 밑반찬 용으로도 잘 먹고 있다. 냉장고 스크린에 오크라가 다 떨어졌다고 알리는 메시지가 떠서 ‘재주문’ 버튼을 일단 눌러본다. 응? 지난번 주문할 때 가격에서 또 올랐네. 지난달부터 하루 걸러 하루씩 강풍에 폭우가 왔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하더니 결국 오크라 생산과 운송에 차질이 생겼나 보다. 아 정말로 ‘먹고’ 살기 힘드네.

요게 바로 오크라 (source: LovePik)


집안일은 로봇이랑 같이 대충 해결했고 점심을 만들어야 하는데… 신선한 채소를 갖고 요리하기 위해서는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또 인스턴트 밀웜 볶음을 점심 메뉴로 선택했다. 밖에는 또 빗방울이 떨어지려고 한다. 팬데믹과 널뛰는 날씨 때문에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면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텐데 밀웜은 좀 지겹다. 이런 일상도 언젠가는 익숙해 지기를 바란다.

요게 밀웜 볶음 (source: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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