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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노력의 메인스트림에서 한 발 물러서기

제시어로 글 쓰기

Written by 리나


선택된 제시어: 기후위기, 길, 열정, 번아웃


얼마 전 모 방송에서 대기업 다니다가 그만두고 한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엄마가 방송에 나온 적이 있다. 방송은 그녀에 대해 한의사, 작가, 유투버에 엄마 역할까지 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묘사했었고, 그 방송 클립에 대한 댓글들은 ‘대단하다, 존경스럽다, 나 자신이 부끄럽고 반성하게 된다’와 같은 내용이 대다수였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건가. 누가 시키면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상이다. 본인이 좋아서 하겠다는데 나쁘게 볼 것까지는 없지. 하지만 그런 삶이 ‘옳고’ 그렇지 않은 삶은 ‘틀렸기’ 때문에, 그렇게 살지 못하는 본인이 부끄럽고 반성된다는 생각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는 삶의 방식이니 특별히 평가를 할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게 살지 않은 사람들이 왜 반성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댓글을 달고야 말았다.


나의 댓글에 대한 대댓글들이 꽤 재미있었다. 적극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 의견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틀렸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은 내가 ‘그냥 놀고먹고 싶어서 열심히 안 하다가 나중에 잘 안 되고 힘들어지면 세상 탓이나 할 인간’으로 보인다고 했다.

음. 그럴 수도 있으려나.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열심히 하는' 것인가? 설사 방법을 안다고 해도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나? 한 때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힘들어도 참고, 억울해도 참고,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그냥 ‘노력’했다. 그 결과 몸이 천근만근, 마음도 천근만근, 흔히 말하는 번아웃이 와서 나가떨어졌지만 말이다.


우울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현재 나에게는 지금부터 심기일전하여 방송에 나왔던 그녀처럼 하루에 3, 4시간씩만 자면서 ‘노력’하면 미래에는 원했던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 같은 것은 없다. 그렇다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덕이는 것도 아니다. ‘노력’이라는 것은 내가 가고 싶은 명확한 이 있고 목표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사실 아직도 그 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갈 을 지금 꼭 정확하게 정해 놓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 크다. 왜냐하면 내 생각도, 내 주변 상황도, 이 세상도 늘 바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자고 계획을 세워 놓았건만 내 의지도, 이 세상도 그 계획과는 상관없이 제 갈 길을 가는 것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 

흠. 그러면서도 ‘정말 원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호시탐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때려치울까 하고 기회를 엿보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큰 방향만 놓치지 않으면 되지 않나 한다. 개인 문제도, 사회 문제도, 해결을 위한 단 하나의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기후위기와 같은 매우 시급한 문제에 대해서, 대책을 세우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하고 있는 티도 안 나는 이런 상황을 보고 있자면 답답하고 화가 난다. 그런데 이것이 이내 절망과 외면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점이다.


잘 알려진 유명한 스님께서, 공익 활동가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큰 열정을 갖고 일을 엄청 열심히 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것도 경계하라고 하셨다. 불타오른다면 언젠가 그 불은 꺼지기 마련. 희망에 찬 미래를 꿈꾸며 자신이 그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는데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큰 허탈감에 빠져서 그리도 열성이었던 그 일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멀어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렇기에 아주 긴 호흡으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비록 중간에 길을 많이 돌아간다 하더라도, 생각했던 그 방향으로 조금씩이나마 나아갈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싸워 나가는 것도 번아웃되어서 중간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재미있게 꾸준히 대응해 간다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대책 없이 희망적인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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