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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타는 사람

Written by 동재

K는 서퍼였다.

그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여름 서핑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찾은 양양에서였다. K는 서핑을 배우기 위해 양양을 찾은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실력을 뽐내며 파도를 갈랐다. 사람들이 서핑에 관심을 갖기 전부터 그곳의 서핑 문화를 개척했다고, K는 자랑하듯 얘기했다.

서핑에 대한 K의 열정은 대단했다. 풍랑주의보가 내린 둘째 날 우린 안전이 걱정돼 숙소에 남았다. 여전히 골아떨어진 우리 모습이 무색하게 새벽부터 보드를 챙기고 나간 K는 어둑해질 무렵에서야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안 위험했냐는 말에 ‘난 환하게 뜨거웠다 지는 불꽃처럼 살겠다’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속 대사를 읊조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서핑이 왜 그렇게 좋냐는 나의 질문에 돌아온 그의 대답은 사뭇 진지했다. 파도를 타는 게 사는 것과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서랬다. 파도는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파도를 잡고 일어나서 자세를 유지하는 일련의 동작들은 인간이 운명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K는 자신이 느낀 걸 양양을 찾은 사람들이 다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 해 여름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였던 난, 그런 K를 보며 어느 하나에 그런 열정을 쏟은 적이 있었나 스스로 되물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음 해 여름, 난 다시 양양을 찾았다. K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열정 넘치던 K의 모습은 더는 찾을 수 없었다. ‘번아웃’이 왔기 때문이라고, 동료 서퍼가 말했다. 내리쬐는 햇살에 바람도 선선했지만, K는 좀처럼 어두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자기가 하루만 살고 죽는 하루살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K는 얘기했다. 매년 양양을 찾는 사람들은 달라지지만 같은 자리에서 서퍼로만 살아왔던 본인이 광대 같았다고 고백했다. 이젠 다시 돌아갈 길이 없다는 K의 눈빛이 사뭇 슬퍼 보였다. 위로 같은 위로는 전하지 못한 우리는, 늘 그랬듯 다시 양양을 떠나 일상을 살았다.

그리고 올해 다시 찾은 양양에 K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어느 날 짐을 챙겨 고향으로 다시 갔다고, 마지막까지  같이 일했던 동료가 얘기했다.


꺼진 불꽃의 빈자리는, 크게 돋보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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