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학부모

단체 기합

by 박점복

아이들의 인권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해진 지금의 시각으로야 이해 자체가 불가하다.'아니! 어떻게 그렇게 미개한(?) 짓을......' 분개해 마지않고 말고다.


소위 단체 기합을 주게 된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내게 닥친 감당하기 쉽지 않은 후유증 이야기이다. 작은 시골 마을 하나뿐인 교회였고 내가 출석하곤 했던 교회의 목사님이 주인공이다.


그분의 딸도 예외 없었던 단체 기합에, '소중한 내 딸에게 감히.....' 장문의 편지를 내 자취방 문틈에 끼워 놓고 가신 사단이 벌어졌다. 퇴근 후 발견한 편지 내용인 즉, 한 번 만나고 싶으니 교회로 와 달라는 것이었다.


이 또한 지금의 시각으로는 바른 요구 방식이 아니다. 딸의 교사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으로 대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나이 어린 초임 교사에게 충고도 할 겸 그랬으리라. 공(公)과 사(私)의 경계를 분명히 분별하지 못한 대처였던 것이다.


그렇게 빗나간 교사와 학부모간의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못한 채 그곳 초임지를 떠날 때까지 지속된 걸 보면 말이다. 지금이야 설정조차 쉽지 않은 안타까운 그 시절 이야기로 평가 역시 어렵다.


당시에도 이미 체벌이 금지되었다는 유럽과 미국 등의 교수법이 어찌 이해가 가능했겠는가? 은근히 부럽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아니 어떻게 체벌 없이 교육이 가능할까?'


역사는 가정(if~)이 있을 수 없으니 아련하고 마음 아팠던 그 시절을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떠올려 본다. 아무리 시대 상황이 그랬어도 단체로 기합을 주는 일은 무리였더란 항변? 그래도 그렇지 80년대를 현재의 거울에 비추면서 판단한다는 것 역시 딱 맞아떨어지는 톱니바퀴랄 수 있을까?


이런 혼란이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채 내 맘 깊숙한 어딘가에 여전히 흔적으로 남아있다. 단체로 기합의 벌을 주었던 그때가.

이전 01화교내 합창 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