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 남동생의 거한(?) 첫돌 잔치
초임지 학교가 선사한 선물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나지막한 언덕을 몇 군데 거치면 비로소 학교에 도착하는 현미(가명)네 동네 친구들이 있었다. 옛날을 추억하는 특정 TV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나 가끔 접하게 되는 장면이니 꽤나 먼 과거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으리라.
40년이나 지났지만 그렇게 초임지에서 만났던 아이들 모습을 떠올리면 어제 일처럼 내겐 여전하다. 마치 졸업한 학교를 세월이 한참이나 지나 우연히 찾게 되면 느껴지던, '아니, 그렇게 넓던 운동장이 언제 저렇게 손바닥만 하게 쪼그라들었지' 조금은 안타깝고 아련하면서도 훌쩍 곁을 떠나버린 순수처럼 그리워지곤 한다.
그 산너머 현미네 집에서 큰 돌잔치가 열린단다. 현미 담임선생님, 그리고 교과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초대하셨다. 요즘 시각으로의 판단은 배제하고 말고지만,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아쉬움 듬뿍 묻어나는 정겨운 초대였다.
딸만 아홉을 낳으신 후 그토록 바랐던 아들을 드디어 얻게 된 경사 중 경사였을 테니 여덟 번째 딸 현미네 학교 선생님들께도 뿌듯함을 왜 알리며 자랑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아들을 꼭 얻었어야만 했던 시절, 그리 오래전 옛이야기만은 아니잖는가. 지금이야 거의 사라져 버린 아들 선호 사상이 너무도 뿌리 깊었던 시절의 웃픈 사연이기도 하다.
요즘이야 아들 딸은 고사하고 젊은이들이 도무지 결혼 조차 쉽게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세계에서 가장 낮은 신생아 출산율 국가로의 전락은 당연히 뒤따르는 결과 일 수밖에.
천하를 다 얻은 듯 좋아하시던 현미 부모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동시에 자식 열을, 딸 아홉에 막내로 열 번째 아들을 낳느라 고생하셨을 현미 어머니의 많았던 주름살과 실제 연세보다 훨씬 높아 보였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선생님들이 자기 집에 오신 게 좋았을까, 아님 기다리던 남동생이 첫돌을 맞고 잔치까지 성대하게 베풀게 되어 어린 나이지만 덩달아 흐뭇했을까? 현미의 싱글벙글하던 해맑음이 가을바람 선선할 즈음이면 유독 더 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