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가곡 '들장미'를 들을 때면 언제나 중구난방, 좌충우돌 신출내기 교사 적 내 모습과, 더불어 사랑스럽던 우리반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목소리가 겹치며 스쳐간다.
요즘처럼 교사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면, 꿈도 꿔보지 못할 높기만 한 산이었을 텐데. 천만 다행히도 무시험 검정으로 교사가 되는 행운을 누렸으니.
그렇게 처음 만난 우리 반 아이들과의 교내 합창대회 준비. 초임교사에겐 너무도 버겁고 큰 행사였지만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라니. 어디서 그런 용기와 배짱이 솟아났는지......
도움 받을 악기라곤 오로지 교사의 열정과 아이들의 순수함 밖에 없었다. 피아노가 첫음만 '띵'하고 눌러 주었어도 매번 조가 바뀌는 혼란은 없었을 텐데. 열악한 연습 장면을 떠올릴 때면 저절로 입가에 쓴 미소가 지어지는 건 감출 수 없나 보다. 또한 아이들에게 못 할 짓이었음에 미안할 따름이기도 하다.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말도 못하고.
좋은 성적을 내야한다는 욕심에 다른 반들은 모두 제창으로 힘차게 부르겠다는 전략으로 나올 때 우리반은 명색이 합창대회이니 만큼 파트를 구성해 대회 취지에 걸맞게 참여키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전문 합창단도 아니고 소리 영역과는 무관하게 대충 앞번호부터 반은 소프라노, 나머지 뒷번호는 알토로 나누어 파트를 구성했다.
성가대원으로 실력(?)을 쌓은 터라 그래도 어느 정도 지도는 가능하겠지 생각했던 게 무리였다. '웬 아이가 보았네~' 첫 소절 "웬"의 음을 잡아 줄 때마다 소프라노 파트 첫음 솔(G)음이 엘토로 넘어가면서 조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 반대 역시 엘토 첫음 미(E) 소리를 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실전에 강하리라 확신하면서 대회 시작전 마지막 피아노 반주와 함께 한 연습시간, 아이들의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적응을 못하고 만 것이다.
소기의 성과와는 무관한 채 죽을 쓰고 말았지만 우리 반 만의 독특한 시도가 심사위원들의 인정을 받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으니 초임 교사의 미숙함을 충분히 메꾸고도 남을 만큼의 보상이었다. 나를 기쁘게 한 아이들의 순수한 목소리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또렷하게 오버랩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1980년 죽산중학교 1학년 우리반 아이들, 지금은 교사인 나와 더불어 같이 늙어가며 사회 곳곳에서 그 몫을 다하고 있으리라 기대해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