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미야!, 버들아!, 푸르나야!

첫 학교에서 만난 행운의 나비 효과

by 박점복

"사랑보다 더 슬픈 게 정" 이란다. 까마득히 멀리 곁을 떠난 세월 1980년, 나의 첫 근무지 '죽산중학교는 왜 내가 졸업한 학교처럼 도무지 잊히질 않고 또렷이 남아 있을까? 듬뿍 들어 버린 정 말고는 딱히 다른 이유는 없다.


수많은 우리 아이들의 이름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때가 많고 말고다. 그 많던 이름들 중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맴돌고 있는 이름들이 있으니 바로 '보미', '버들', '푸르나'이다.



행여 실명이 거론되어 어려움을 당하는 불상사는 없길 소망하면서 너무도 예뻤던 순수한 우리 한글 이름을 만났던 행운(?)을 잊을 수 없어 허락도 없이 부족한 글에 사용하게 됨을 염치없지만 양해를 구하려 한다.


공교롭게도 세 자매가 나란히 같은 학교에 다니는 쉽지 않은 인연을 맺게 되다니. 여러 우연들이 겹치고 겹쳐야만 가능한 일임은 분명하다. 불가(佛家)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데.


너무도 독특했던 세 자매의 이름 짓기, 당시만 해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한 충격으로 초임 교사인 나의 뇌리에 얼마나 깊숙이 박혔던지.


전통이 중요하네, 항렬이 필요하네 라며 온통 한자 이름 투성이었던 그때 과감(?)하게 그리고 파격적으로 세 딸의 이름을 '봄에 버들이 푸르다'며 보미!, 버들!, 푸르나!로 짓고 부르시던 세 자매의 부모님.


한참이나 세월이 흐르고 난 후 내 딸아이의 이름도 순수한 한글로 짓게 되는 선한(?) 영향력, 나비 효과로 나타날 줄은.



내 이름에는 옛 어른들이 너무도 중요시 받들었던 복(福) 자가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내 딸들의 작명에 물론 내 이름이 큰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순 없지만, 보미, 버들이, 푸르나로 예쁘게 이름 지어 부르셨던 세 자매의 아버지이자 학부모님을 만났던 인연 또한 너무 큰 파장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내 딸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신기하게도 40년 전, 1980년 세월이 연상되곤 한다. 아직 딸들의 허락을 받기 전이기에 이름을 못 밝혀 드림을 용서해 주시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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