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주류들처럼 맥주도 자신을 구하기 어렵게 만들어 몸값을 높인다. 전에 말했듯 계절 한정으로 나오는 맥주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맥주는 생산 지역 한정으로 유통된다. 이는 맥주를 산지에 방문해야만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으로 만드는데, 맥주의 맛 또한 특별하게 좋으면 그 가치는 배가 된다.
그중에도 알만한 사람들의 입에만 오르내리는 전설과도 같은 맥주들이 있다. 이런 맥주는 이야기 속에 흔히 등장하는 유니콘 같아서, 대부분의 사람은 그 존재를 모른다. 우연히 "저 산 너머에 가면 있다더군" 따위의 풍문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도 실제로 본 적도 마셔본 적도 없을 수 있는 그런 존재다. 물론, 이런 맥주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마셔보지 못한 맥주에 밤잠을 설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찾아 떠나야만 하는 대상이 된다. 오늘은 이런 유니콘 같은 맥주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직 맥주 일기 앱도 사용하지 않던 맥주 새내기이던 무렵, 구미를 당기는 풍문을 들었다. 밸런타인데이에 즈음하여 2주간, 한 사람당 딱 세 잔만 마실 수 있는 맥주를 판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맥주의 맛이 대단해서, 그 2주간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몰랐으면 모를까, 이런 맥주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안 이상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나는 그 해의 맥주의 판매 일정에 대한 공고가 올라오길 손꼽아 기다렸고, 판매 일정이 확정되자마자 주위의 호기로운 친구들을 설득, 원정대를 꾸렸다.
원정에는 1박이 필요했다. 우선 맥주집이 차로 두 시간이나 걸려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고, 12도짜리 맥주 세 잔을 짧은 시간에 들이켜야 하는 까다로운 퀘스트였기 때문이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분명히 예상되는 만큼 누가 운전을 할 것인가를 놓고 눈치를 보는 것 또한 피하고 싶기도 했다. 그 전 해에 이 맥주를 마시고 온 지인도 자기의 기억을 돌이켜보며 1박을 권했다.
기다리던 2월 6일. 저녁이면 통행량이 급증하는 금요일인 만큼 일과를 비교적 일찍 마치고 원정길에 올랐다. 운전한 지 한 사오십 분쯤 되었을까. 불현듯 내가 지갑을 가져왔는지가 궁금했다. 슬픈 예감은 잘 틀리지 않듯, 지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다. 지갑이 없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신분증을 놓고 온 것이 문제였다.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믿기지 않게도) 내 얼굴이 술을 마시기에 어려 보이는 모양인지 종종 신분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지금 가던 길을 계속 간다면 넉넉히 도착해서 시간 안에 맥주집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률에 희망을 걸어야 했다. 반대로 집에 되돌아가면 신분증 때문에 맥주를 못 먹는 일은 없겠지마는 맥주집이 닫기 전에 입장하지 못할 수 있었다. 고민한 결과 집에 되돌아가는 편이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신분증이 있다면 최악의 경우 그다음 날에 다시 시도해볼 수는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일행 중 하나가 운전해 가던 중 나와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것인데, 그의 선택은 후술 하도록 하겠다.
집에 다시 다녀온 탓에 일행과 합류가 힘든 상황이 되었는데, 일행 중 일부가 다른 이유로 출발이 늦어져 소수의 후발대가 꾸려지게 되었다. 같이 줄을 서서 기다릴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영업 종료시간이 못 박혀 있는 까닭에 일정이 늦어진 만큼 원정의 성공 확률도 그에 따라 낮아졌다. 심지어 일행 중 한 명은 맥주집이 문을 닫기 한 시간 남짓을 남기고 도착한다는 소식을 전해와 최악의 경우 그녀를 놓고 가야 할 수도 있는 눈물겨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우리는 어찌어찌 맥주집 앞에 늘어선 줄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금요일 밤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줄은 예상보다는 짧았는데, 2월이라 다소 서늘한 날씨에 종일 비가 온 데다 맥주집이 문을 닫기까지 세 시간 남짓밖에 남지 않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큰 횡재라도 한 듯, 늦게 도착했지만 기대했던 맥주를 오늘 마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흥분에 떨었다. 아직 추적추적 내리고 있던 비에 우리 몸도 바들바들 떨리곤 했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 맥주집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이 빠져나와야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규칙인 만큼, 모든 이의 이목은 오로지 맥주집 문에 집중돼 있었다. 집을 향하는 손님들이 문을 열고 나오는 매 순간 줄을 서있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몸짓으로 기뻐했다. 그러다 다수의 일행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기라도 한다면 하나같이 큰 소리로 기뻐했다. 그렇게나 다들 한 마음일 수 없었다.
줄 서있는 사람들의 환호에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종종 취기를 곁들인 응답을 보냈다.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불쌍한 우리 중생들의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듯 자신이 목도한 전설의 환희를 큰 목청으로 알려왔다. 목소리의 크기만큼이나 우리의 기대감은 커져갔고, 집을 향하는 사람들의 만족한 얼굴 표정만큼이나 우리 머릿속 맥주의 맛은 깊어져만 갔다. 몇몇 사람들은 전리품으로 사 가지고 나온 맥주 상자를 머리 위로 흔들며 자신의 오늘 원정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를 온몸으로 발산했다. 그 와중에 한 청년은 안타깝게도 상자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고, 수북이 거리를 적시던 맥주 거품으로 보아 상자 안의 12병이 모조리 깨진 것 같아 지켜보는 나조차도 눈물이 핑 도는 것 같았다.
대략 30분 정도 지났을까, 줄이 꽤나 줄어들어 지근거리에 맥주집 입구와 걸어놓은 현수막이 보였다.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었고, 우리는 날씨와 타이밍이 만들어준 행운에 꽤나 들떠있었다. 선발대가 네 시간을 기다렸네, 그전에 방문했던 친구들은 다섯 시간을 기다려야 했네 하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더욱 그랬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오기로 한 일행이 문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우리와 합류했는데, 한 시간도 채 안 기다리고 이 맥주를 먹게 되었다며 우리는 그녀의 행운에 감탄을 해 대었다. 우리 뒤로 줄 서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감정이 들었으나 다들 양해해주는 눈치였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고 우리는 드디어 맥주집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맥주집 직원 하나가 문 앞에서 우리를 막아서고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했다. '내 이랄줄 알았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문으로 들어서자 아직 맥주집을 서성이고 있던 선발대를 보게 되었는데, 나와 비슷하게 신분증을 놓고 온 친구도 함께였다. 늦지 않게 맥주집에 들어왔다는 점에서는 그의 선택이 다소 옳았다고 하겠으나, 고대하던 맥주를 눈으로만 즐겨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니 어떻게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는 분명했다. 직원에게 들키지 않게 다른 사람의 것을 몰래몰래 마시던 친구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맥주집으로 들어서면서 우리는 플라스틱 팔찌를 하나씩 받았다. 팔찌에는 작은 티켓이 세 개 붙어있었는데, 티켓 하나당 Pliney the Younger (이후 영거) 한 잔을 의미했다. 1년에 2주밖에 못 마시는 맥주에 쩨쩨하게 세 잔이 웬 말인가 싶겠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다. 앞서 말한 대로 영거는 도수가 12도나 되는 Triple IPA로, 파인트 한 잔에 꽉 채우면 소주 한 병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입장객들에게는 2시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세 잔은커녕 한 잔도 다 마시지 못하기 일쑤였다. 우리 후발대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1시간. 그 안에 나는 내게 허락된 세 잔을 음미하면서도 동시에 모두 클리어해야 했다.
영거는 소문대로 굉장했다. 도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아홉 가지의 홉을 넣었다고 들었는데, 모나게 튀어나오는 녀석이 하나 없이 절묘하게 비율을 맞춘 모양이었다. 12도라는 도수가 무색하게 굉장히 마시기가 수월한 맥주였는데, 이 맥주집을 전국구로 만들어준 Double IPA, Piney the Elder(이후 엘더)도 영거에 비하면 다소 거친 느낌이었다. 차갑디 차가웠던 영거는 재밌게도 비와 추위로 떨었던 내 몸을 후끈 덥혀주었다. 맥주집에서 파는 음식 또한 걸출했는데 영거만 아니었더라도 각자들 풍문으로 떠돌법한 굉장한 맛이었다. 다소 늦은 저녁이었으나 유니콘에 걸맞은 성찬이었다.
맥주집이 문을 닫으려고 할 무렵, 우리는 주인의 손에 등 떠밀려 맥주집 문을 나섰다.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세 잔을 다 소화하지 못한 일행의 몫마저 다 마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내년을 기약하며 거나하게 취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그다음 해에도 우리는 영거를 마시러 갔다. 지난 원정의 교훈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좀 더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모두들 신분증을 가져왔고, 지난번에 유효했던 대로 맥주집이 문을 닫기 세 시간 전에 줄을 섰으며, 영거를 마실 때는 소주를 대하듯 지난번보다 천천히, 너무 취하지 않도록 마셨다. 나는 내게 허락된 세 잔을 다 마셨음은 물론이거니와 아내의 몫도 거들어 더 오래 영거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더랬다.
매년 이어질 것 같던 이 연례행사는 그다음 해를 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 전 두 해와 달리 이번에는 대낮부터 줄을 섰는데, 그 기다림이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이어졌기 때문이다. 장시간 줄 서기는 꽤나 고역이었는데, 우리는 각자 번갈아 가며 점심을 먹고 와야 했고, 화장실도 수차례 다녀와야 했다. 꾸역꾸역 기다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즈음 우리는 맥주집에 들어섰는데, 그 전 두 해만큼 즐거운 마음은 아니었다. 물론, 영거의 맛은 언제나처럼 훌륭했다. 하지만, 길 위에서 보낸 다섯 시간은 자꾸 나의 선택을 반문하게 했다. 영거의 맛이 더 이상 다섯 시간짜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매해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삼 년간 친구들과 함께 했던 이 "연례행사"는 맥주를 생각하면 꼭 떠오르는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리고 지금도 다시금 영거를 마시러 맥주 여행을 떠날 핑계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