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
새로운 일에 집중하기에는 짧은 자투리 시간이 생기게 될 때 가장 만만하게 하는 일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이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아주 예쁜 드라마가 바로 <옷소매 붉은 끝동>.
배경 영상과 궁중 복식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표현되어 그저 영상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 제목만으로는 어느 시대인지 감이 없었는데 보다 보니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주인공인 정조가 주인공이다. 기본정보를 보면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 기록이라고 쓰여있다.
한때는 그렇게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이야기가 그려지더니 요즘은 영조, 정조가 자주 등장한다.
정조가 주인공인 드라마로는 <이산>이 바로 떠오르고,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 씨를 주인공으로 한
<동이>가 있었고 영화로는 <역린>, <사도> 등이 생각난다.
정조 이산 역에는 2PM의 이준호인데 가수가 아니라 원래 연기를 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왕의 위엄도 보여 주며 가끔 귀여운 면까지. 게다가 낮은 저음의 목소리에 힘이 있어 딕션도
꽤 좋다. 여자 주인공 이세영 역시 표정이나 발음, 동작 모두 과함이 없이 편안해서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드라마 감상평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아니 드라마 감상평을 할 만한 깜냥도 아니 되고 하던 대로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0회 엔딩은 영조와 세손 이산의 대립이 극으로 치닫는다.
왕의 잔치에 영조의 선왕인 경조의 죽음과 관련 있는 음식이었던 게장과 생감이 올려지며
영조를 자극한 것. 영조는 당장에라도 큰 일을 낼 듯이 이산을 위협하면서 끝이 나는데...
에휴, 이렇게 엔딩이 되면 다음 회를, 아니 일주일을 또 어찌 기다리나.
그러나 어쩌겠는가!
뭔 뾰족한 수도 없으니 당연히 성 나인이 이산을 구해 줄 것이라는 기대로 기다리는 수밖에.
일주일을 지나 11회가 시작된다.
근신형이 내려져 처소에 갇힌 이산을 돕기 위해 고민하던 덕임에게 하늘의 기회가 내려온다.
상궁계의 최고 권력자 제조상궁 조 씨의 눈 밖에 나 갇혀있던 사도세자의 보모상궁이었던 박상궁이
자신을 도와준 덕임에게 단서를 주는데 바로 <금등지사>가 있다고 말을 해준다.
<금등지사>의 ‘등’은 ‘봉하다’라는 의미로 쇠 상자로 봉한 문서라는 뜻인데 억울하거나 비밀스러운 일의 진실을 후세에 알릴 수 있는 비밀문서라는 의미이다. 서경의 기록 중에 주나라 무왕과 관계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약속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사도의 아들이 무사히 보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하겠다'라는 문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박상궁이 바로 덕임에게 이 금등지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 것.
덕임은 사도세자의 부인 혜빈 홍 씨를 찾아가 금등지사의 비밀을 찾아야 한다고 하고
사도세자가 남긴 것이 없냐고 한다.
찾은 단서는 혜빈 홍 씨의 손가락에 끼던 반지에 새겨진 숫자 5(五), 그리고 덕임의 어깨에 새겨진 밝은 명(明), 그리고 박상궁이 가지고 있던 방한모 <휘향> 안에 쓰인 봉우리 봉(峯).
오, 명, 봉이라는 세 글자를 찾아냈는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게 뭘까?
어떤 단서일까?를 함께 고민해보게 된다.
그때 덕임의 오라비가 덕임의 어깨에 새겨진 명자를 두 글자로 가르니 일(日)과 월(月)로 나뉜다.
이제 찾은 글자는 일. 월. 오. 봉.
오호 일월오봉도에 금등지사가 있구나!!
일월오봉도는 궁중장식화의 하나지만 궁을 장식했던 그림으로만 이해하기보다는 각종 의례에
사용되기도 하고 왕실의 권위와 안녕을 기원하는 바람을 담은 상징적인 그림으로 봐야 한다.
장식화로는 일월오봉도 이외에도 모란도, 십장생도, 해학반도도, 책가도 등이 있다.
일월오봉도는 다섯 개의 봉우리, 왼쪽에서부터 첫 번째 두 번째 봉우리 사이에 달,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봉우리 사이에는 해, 봉우리 사이의 폭포, 이외에도 넘실거리는 물결과 양 쪽 끝에 두 쌍의 붉은 소나무, 바위들로 구성된 틀이 정해져 있는 그림이다.
조선시대 회화가 비교적 수묵 담채가 많은데 일월오봉도는 빨강, 초록, 파랑 등 보색 대비가 확실한
화려한 채색화이다.
실제로 보면 너무나도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와 단순화된 구도로 그려진 그림이라 멀리서 봐도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그림이다.
비단에 주로 그려지지만 종이에 그려진 것도 있다.
왕이 있는 곳이라면 궁궐 안팎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 왕의 의자인 어좌 뒤에 놓인다.
주로 병풍의 형태로 제작되고 '일월오봉병', '일월오봉도', '일월오악도'라고도 하며
어디든 그림을 가지고 다닐 수 있게 휴대용으로 제작된 것도 있다.
궁중의 중요 행사를 기록한 궁중기록화 속에 왕의 모습을 직접 그리지 않고 일월오봉도를 그려놓아
이곳이 왕이 있을 자리임을 알려준다.
지존하신 왕을 함부로 그릴 수 없었기에 왕의 존재 표현을 이렇게 그림으로 대신하였다.
근정전, 인정전과 같은 정전은 왕의 공식적인 큰 예식을 치르는 곳으로
왕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다른 곳보다 정전의 어좌는 실내 안에 또 다른 집 당가를 지어 화려한 지붕을 얹고 기단을 만들어 하부를 장식한 곳에 있다.
신하들의 자리보다 몇 계단 위에 단을 마련한 후 어좌를 놓고 어좌 뒤로는 세 번 굽은 병풍인 삼곡병이 그리고 그 삼곡병뒤로 일월오봉도를 배치한다.
영조는 기억을 되살려 사도와 약조했던 문서를 일월오봉도에 숨겼음을 기억해내고 이 문서를 통해 이산은 폐세손이 될 위기를 넘기고 영조에 이어 정조로 등극하게 된다.
사극을 보다 보면 궁중복식이나 드라마 속 배경으로 사용되는 소품들 중에 우리가
꼭 기억했으면 하는 유물들이 가끔 나온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사극을 보면서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유물만 이렇게 눈에 들어오나 보다.
어쨌든 애절한 궁중 로맨스라고 씌어있었지만 극의 마지막으로 가는 만큼
둘의 애절한 사랑이 이제는 결실을 맺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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