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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Mar 13. 2023

그녀가 내 카톡에 답을 하지 않는다


난 예민한 달팽이. 밖에 오래 있는 걸 힘들어하고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래.

내 카톡에 그녀는 답이 없다. 읽기는 했다. 그게 더 답답한 노릇이다. 내게 무슨 서운한 일이 있었던 건지 답을 하지 않은지 오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마주한 날 분명 아주 편안한 얼굴이었다. 어느 날이 기점인지 어떤 일이 계기인지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다.


동시 읽고 울어봤어?

오늘도 답이 없다. 어김없이 확인만 하고선. 뭐라고 답을 하면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무심히 읽기만 하자 나도 그만 마음이 상해버린다. 일방적인 카톡을 보낸 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엔 나에 대한 연민이나 그리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내가 뭘 잘못한 거냐고 대놓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건 나도 자존심이 상한다.  


스타벅스, 자몽허니 블랙티, 그란데사이즈, 클래식 시럽 3, 허니자몽소스 6. 맞지?

오늘 기분이 비 맞은 솜사탕 같아.

박원의 노력. 들어봤어?

그만한다 해놓고선 마음이 쉬이 돌아서지 않아 답이 없는 카톡을 오늘도 보낸다.




최근 콜 포비아란 용어를 접했다. 전화를 뜻하는 Call과 공포증 Phobia의 합성어로 전화공포증 또는 전화울렁증이란다. 전화 통화 같은 직접소통 방식을 기피하고 간접소통 방식을 선호하는 것이라 한다. 친구와의 수다, 은행업무, 배달주문까지 스마트폰으로 가능한 시대라 비대면에 익숙해진 젊은 층 사이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하는데 나는 젊은이가 아님에도 약간의 전화울렁증이 있다.


그것이 전화울렁증이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저 전화 통화를 할 일이 생기면 자꾸 미루게 되거나 하더라도 미리 메모를 하거나 마음속으로 여러 번 연습을 한 후 말해야 했다. 가능하면 전화보다는 카톡이나 메시지를 이용해 소통했고, 음식을 주문할 때도 전화보다는 어플을 이용했다. 신랑이 전화 주문을 하면 할인을 받을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어플을 이용하냐 할 때에도 나는 마땅한 이유를 말하지 못한 채 전화하기가 싫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전화 통화를 피했다. 그런 마음을 용어로 접하고 나니 오히려 행동에 타당한 변명이 생겨난 듯한 느낌이라 안도감마저 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본래도 전화 통화를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은 아니지만 싫어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작은 결혼을 하고부터다. 시어머니는 관심받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해주길 원했고, 조금 뜸하다 싶으면 서운함을 내색하셨다. 껄끄러운 소리가 듣기 싫었던 나는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미리 전화를 해야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마치 숙제를 하듯 미루고 미루다 마음이 벼랑 끝에 섰을 때 겨우내 하곤 했다.


신랑과 같이 퇴근하는 길에 시어머니가 신랑에게 전화를 한 날에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옆에서 말을 거드는 것으로 주의 숙제를 해결했다. 며칠을 벌었다며 안도하고 있던 때 눈치 없는 신랑은 시어머니가 전화가 뜸한 것에 서운해한다는 말을 굳이 친절하게 전해주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 통화는 아들과의 통화였지 며느리와의 통화는 아니었던 것이다. 상대와 직접적인 통화를 하고 있음을 주지한 상황에서, 청자에게 가까이 들리는 목소리로, 최소 몇 문장 이상을, 주고받아야 '통화'로 인정한다는 시월드식 규정이라도 있는 것인지 일심동체를 외치던 결혼에서 유독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받던 순간이었다.  


통화가 불편한 가장 큰 이유는 번씩 찾아오는 침묵의 순간 때문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부간에 공통관심사라 해야 신랑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먹는다, 살이 오른다 그러고 나면 말할 소재가 없는 것이다. 원래도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침묵이 생길 때면 뭔가 오디오를 메워야 것만 같은 부담감을 느끼곤 하는데 그것이 시어머니와의 통화일 때는 그야말로 고역인 것이다. 머릿속으로 말을 쥐어 짜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통화인가, 이것은 통화인가 고문인가, 친정 엄마와도 용건만 간단히 하는데, 신랑은 굳이 장모님께 전화하지 않는데 나는 왜 이런 부담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하며 홀로 절규하곤 했다.


물론 이제는 세월이 흘러 꼭 필요한 용건이 있을 때에만 통화를 한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마음 한 편에 서운한 마음이 있을지라도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나는 한 번씩 하는 전화에 진심을 다하는 것으로, 시어머니는 연락하는 걸 즐기지 않는 며느리를 그런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화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내게 전화울렁증이 아직 남은 또 하나의 이유는 직장에서 겪은 민원인들과의 통화 때문이다. 관공서에 전화하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관공서에서 행하는 일에 반감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전화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 불편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의 범위라면 굳이 말이 길어질 것이 없지만 간혹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인 경우는 언성이 높아지거나 거친 말이 들리기도 한다. 자칫 말꼬리라도 잡히면 상사 또는 상부에 민원을 넣어 일이 본의 아니게 커지는 경우도 많으므로 최대한 내 감정을 누르고 대화를 이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전화는 내 일이기도 하고 내 일이 아니기도 했다. 어떤 때는 그냥 누군가 화를 받아줄 이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유 없이 누군가의 감정에 휘둘리고 나면 맥이 빠지곤 했다.


전화보다 문자나 카톡이 편한 이유는 무엇보다 갑작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즉각적인 대화에서는 어떤 말이 담겨 나올지 몰라서 느껴지는 불안함이 있고,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예측가능한 범위 내의 반응이 아닐 경우의 당황스러움이 있다. 이런 변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타인의 감정에 쉽게 휘말리게 하기도 한다.  


반면 문자나 카톡을 이용하면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충분히 생각하고 말할 있다. 침묵의 불안이 나를 옥죄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문자는 감정이 거세된 형태의 말이라서 내 마음이 편하도록 왜곡하여 생각할 수 있었다. 불안을 낮추는 편으로 해석하여 나를 안심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내게 필요했던 것은 안정되고 차분한 마음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감정에 휩쓸려 쉽게 동요되거나 흥분하지 않고 나의 호흡대로 내 의사를 차분하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  더 완전한 형태로 표현해서 오해를 없애고 싶은 마음. 온전한 소통을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 결국은 내가 하는 것들 중 말하는 것 하나만이라도 내가 주도권을 쥐고 원하는 때에 원하는 형태로 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전화가 불편한 나는 오늘도 그녀에게 카톡을 보낸다. 무뚝뚝하기 그지없고 무심하기 그지없는 그녀에게.

사야 할 것도, 기억할 것도, 갑자기 떠오른 문장도 가감 없이 말한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다 터놓을 수 있는 그녀.


나는 오늘도 나에게 카톡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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