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원 Sep 01. 2021

3화. 맵다 매워, 첫 사회생활

오늘도, 이 기자! - 서른중반 늦깎이 신입기자의 좌충우돌 성장기3

Chapter1. 이 기자, 어떻게 기자가 된 거야?




맵다 매워, 첫 사회생활



 나는 매장에서 손목시계를 팔며 사회생활의 첫 발을 들였다. 스물 둘, 대학을 휴학하고 일자리를 찾던 중, 화려한 손목시계가 반짝거리며 진열된 모습이 근사해 시작한 일이었다. 아르바이트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눈물 젖은 빵과 밥, 술을 두루 섭렵한 1년여 간의 경험은 삼키기 힘든 한약 같았다. 


진상고객은 물건을 파는 곳이면 어디든 존재한다. 직원이 어수룩해 보이면 그들의 전투력은 배로 상승한다. 화내는 유형, 빈정대는 유형, 돌 아이로 변하는 유형 등 모습도 다양하다. 영화 ‘맨인블랙’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평상시엔 일반인으로 위장하여 식별이 쉽지 않다는 점도 그들의 특징. 그때 만났던 다양한 진상 고객은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를 지경이지만, 세월이라는 약 덕분에 어느새 기억은 흐릿해졌다. 


아픈 경험은 거기서 일단락된 줄 알았다. 그러나 적성에 안 맞는 전공과목으로 대학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학점관리를 소홀히 하게 됐다. 취업시장에선 자연스럽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악몽이 재연됐다. 부모님 지인의 소개로 자그마한 사무실에 취직했지만, 진상, 밉상, 화상 ‘쓰리 콤보’를 장착한 대단한 사장님을 만난 덕분에 깊은 내상을 입고 넉다운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이자, 가스라이팅 가해자였다. 그 곳은 이제 막 창업한 작은 개인 사무실이었는데, 사장은 외부인이 있을 때와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너무나 뻔뻔할 정도로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창립행사를 요란스레 준비하면서 초대 손님 오십여명을 대접할 저녁식당을 자기 맘에 드는 곳으로 혼자 예약하더니, 뭐가 맘에 안들었는지 하루 전날 갑자기 취소했다. 이미 재료 준비를 끝낸 식당이 당혹스럽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자 그는 내 핑계를 댔다. 불리하고 불편한 일에 나는 항상 그의 방패막이였다.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사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주 사소한 일로도 수차례 심부름을 보냈다. 그의 성화에 거의 매일 근처 사무용품점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사무용품점 사장님은 “이렇게 야무진 여직원은 처음 본다”며 날 칭찬했지만, 정작 우리 사장은 나를 아주 형편없고 무능력한 직원이라며 대놓고 무시했다. 우리 사무실의 세무 업무를 처리하는 세무사사무실이 바로 윗층에 있었는데, 우리는 돈을 주고 이용하고 있으니,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언제든지 올라가서 묻고 따지라고 채근했다. 사장의 지시에 떠밀리듯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간 세무사 사무실에서 날 쳐다보던 곱지 않은 눈빛들이 지금도 선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툭하면 나를 향해 고래고래 악을 쓰던 사장 때문에 결국 난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다 눈물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우연히 찾아온 세무사 사무실 직원이 봤다. 그제야 그는 내가 사장 친척쯤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유난을 떨며 열심히 일할 리가 없다고 오해했다고 사과했다. 그만두고 싶다고 털어놓자, 등을 토닥여주며 이런 곳에서는 누구도 견디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퇴사하겠다고 말한 나에게 사장은 너 같은 사람 없어도 전혀 아쉽지 않다며, 그렇게 참을성이 없으면 앞으로도 사회생활은 쉽지 않을 거라고 끝까지 가스라이팅했다. 


이후에도 취업 문턱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상태로 가다간 난 평생 백수에 돈 한 푼 없는 거지가 될 것만 같았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결국 난 사회 첫발을 들였던 판매직으로 무겁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간 백화점은 진상계의 고수들이 전투력과 필살기를 맘껏 발휘하는 결투의 장으로 한 단계 진화해 있었다. 밤길 조심하란 협박부터, 니가 뭔데 날 무시하느냐며 고래고래 악을 쓰는 빌런까지 훨씬 스펙터클하게 발전한 그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는 놈이 더 무섭다고, 단전 밑에서부터 10년 묵힌 화를 토하듯 쏟아내고 간 사람이 있었는데,(그의 반경 10미터 이내에 있던 사람들이 대피할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근처 수입자동차 대리점의 세일즈맨이었다. 자신도 누군가를 응대하는 영업사원이면서 다른 사람보다 더 악랄하게 군 그의 모습에 난 모든 의욕과 의지를 놓아버렸다.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는데도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물러설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마음 속 깊은 내상을 입고 1년만 버텨보자며 시작한 일은 2년, 3년 하고도 5년을 채우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기 시작했다. 고작 돈 몇 푼에 나는 좀비가 되고 있었다.

내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느끼던 어느 날, 매장에 멍하니 서있던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하는 일을 10년 후에도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현실을 벗어날 대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생각나는 것은 항상 책을 갖고 다니며 틈틈이 읽는 내 모습이었다. 당시 나는 한 페이지만 읽더라도 책을 옆에 끼고 살았다. 어떻게 그런 대견한 습관을 지니고 있었는지 지금도 칭찬해주고 싶다. 현실이 힘들고 희망이 없으니 책을 통해서라도 한 줄기 빛을 찾고 싶었던 간절함은 아니었을까. 


그러던 난 얼마 후 우연처럼 ‘책 쓰기’에 관한 책을 읽게 됐다.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집어 들었지만, 솔직히 글이나 책을 쓰는 것에는 자신도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평생 글을 쓰지 말라는 저주에 걸린 슬픈 운명의 주인공 아니던가. 


운명이란 때로 아주 심하게 장난을 치기도 하는 모양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순간 이유 모를 의욕이 활활 타올랐다. 

‘나도 글이란 걸 써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2화. 어디 가서 절대 글쓰지 말라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