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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Jun 14. 2023

대영박물관 덕업일치 힐

일어나요 덕후여

첫 휴일, 대영박물관 힐링


신전 왕관을 쓴 하토르 여신의 두상이 매우 예쁜 배 모양 석조물.


싫은 런던의 싫은 업장에 대한 보상은 역시 대영박물관. 덕업일치의 힐링 시작. 런던 파견의 첫 주말을 맞이하여 당장 대영박물관으로 이동. 조금 무리하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아침부터 힘 빼기 싫고 대영박물관 내부에서 엄청나게 걸어 다녀야 할 것을 감안해 버스 탑승. 주말 오전에 드물게 한가했던 덕분에 입장 줄 없이 술술 들어갈 수 있었다. 1층부터 이집트의 대형 유물들을 늘여놓는 전통적인 전략에 덕후는 매번 알면서도 당한다.


대영박물관 서점에서 너무한 책 발견. 일명 노예 길들이기.


서울의 동료 연구원에게 부탁받은 자료가 있어서 우선 박물관 서점 방문. 로마 코너에서 노예 길들이기라는 너무한 제목의 책 발견. Marcus Sidonius Falx라는 고대 로마인이자 골수 귀족인 가상 인물의 입을 빌려 노예 고르는 방법부터 체벌하는 방법까지 로마 노예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제법 흥미진진한 내용을 다뤘음. 살까 말까 고민 중.


동서고금 문명의 죽음과 연결된 도상을 다룸.


현 연구 주제에 참고할만한 도판이 많아서 구매할까 생각했지만 책이 너무 크고 무거워. 결국은 본국으로 돌아갈 사람한테 하드커버는 처치 곤란의 버거운 짐이 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신에 관한 내용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어야 한다고 봄. 제목도 죽음, 묘지의 동반자인데.


투탕카멘의 숨막히는 뒤태로 추정되나 카르투슈는 호렘헤브의 즉위명이 보임.


고오급 화강섬록암이 매우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 이집트 석상은 뒷면부터 보는 게 재밌음. 보통 히에로글리프가 새겨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 하단부의 카르투슈에 ḏsr-ḫprw...는 신왕국시대의 파라오 호렘헤브의 즉위명이다. 소실된 뒷부분에는 stp-n-rꜤ가 적혀 있었겠지. 석상의 양식 상 전전임자인 투탕카멘의 형상으로 추정되는데 하필 호렘헤브의 이름이 새겨진 까닭은 기록말살형에 따라 투탕카멘의 이름을 지우고 호렘헤브가 본인의 이름을 덮었을 가능성으로 추정됨.


그러고 보면 투탕카멘처럼 안쓰러운 캐릭터도 드문 듯. 전임자의 신앙 수복 중에 개명(당)해, 창창한 나이에 죽어, 사인 불분명에 (당대도 이유 모를 갑작스런 죽음이었는지 왕의 죽음을 밝히는 자에게 축복 어쩌고 이런 문구가 있음), 후임자의 기록말살형으로 잊혀지나 싶더니, 웬 영국인이 무덤을 다 파헤치고는 영문 모를 괴담이 돌며 저주의 아이콘으로 음습하게 부활하게 된 3300여 년의 사연이 측은할 따름. 이쯤 되면 그 기구한 운명에 눈물이 다 난다.


카엠와세트 왕자님과 나.


람세스 2세의 아들이며 프타 신전의 대신관이었던 카엠와세트. 람세스 2세의 명에 따라 전대의 건축물을 조사하고 정비하는 등 오늘날의 큐레이터와 유사한 작업에 임했던 이 왕자님은 사상 최초의 학예연구원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대선배님(?)과의 기념비적인 투샷. (발만 나왔지만) 프타대신관이라는 직위가 당대에 곧 이름처럼 사용됐는지 본인이 매우 자랑스러웠는지 본인을 가리키는 명칭을 많이도 새겨두심.


아름다운 서방의 여신 이멘테트.


석관 내부의 이멘테트 여신. 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서쪽의 여신이라 석관 내부에 자주 나타나는 편. 보통 영혼 바를 상징하는 새 장식의 왕관을 쓴다. 무덤 주인에 대한 정보는 안 보고 이멘테트 여신의 형상을 찍는데 엄청 노력했음. 석관은 높고 나는 작아서 내부가 잘 안 보인 탓에 있는 대로 팔을 뻗어 내부를 찍어야 했음. 휴.


신성한 풍뎅이 스카라베. 너무 커.


풍뎅이인지 쇠똥구리인지 아무튼 신성갑충 스카라베. 케프리 신의 현현. 영화 미이라 시리즈 때문에 극 중 홈다이 형벌에 사용되는 식인 벌레로 인식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 듯. 응 그거 아니야. 태양을 굴리는 만물의 생성과 재생의 상징인데.


1층 이집트 조각관의 슈퍼스타, 아멘호텝 3세 두상.


너무 크고 너무 높이 계신 탓에 사진이 잘 안 나오는 아멘호텝 3세. 압박스러운 크기를 자랑하며 측면에 팔 조각도 파편으로 함께 전시돼 상당한 크기임을 짐작할 수 있음. 아마 당대에는 전신 석상이었는데 그때도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높이라 딱 저 각도로 보였을 듯. (측은) 신성한 코브라 우라에우스로 장식된 이중관이 매우 아름다움.


이집토-그레코 양식이 나올 때쯤 만나는 스핑크스.


이집트 같기도 하고 그리스 같기도 한 스핑크스.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이집트 후기왕조 시대쯤 되면 이집트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독특한 스타일이 나타나는데 개인적으로 참 좋아함. 되게 예쁜 조각인데 유리관 때문에 어떤 각도로 찍어도 잘 안 나오는 게 특징. 굉장한 바스트 업 상태.


아시리아 사자의 몸에는 쐐기문자가 잔뜩 새겨졌다.


덕후의 심장을 때리는 건 이집트지만 가슴이 웅장해지는 건 아시리아와 바빌론. 대영박물관 1층에는 라마수 같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대형 조각도 매우 많음. 아슈르나르지팔 2세 시대에 건립된 이슈타르 신전의 일부였던 아시리아 사자 부조의 경우 몸체를 빼곡히 채운 설형문자의 기록이 대단히 매혹적. 두근두근 달려간 메소포타미아 구역은 난데없이 관람제한 중. 껄껄. 이래야 내 런던이지. ㅅㅂ


문어 문양이 참으로 예쁘다.


별 수 없이 지중해 도기 구역으로 이동. 문어 문양 도기는 최고 존엄으로 예쁨. 문어의 정방형이 거꾸로 된 형상이라는 믿음은 꽤나 근대까지도 유지됐던 모양. 문어 다리가 머리카락처럼 쏟아져서 더 예쁨.


아킬레우스의 무덤에서 희생당하는 폴릭세네.


아킬레우스의 혼을 달래기 위해 그리스 군대에 희생당하는 (전) 약혼녀 겸 (현) 제물 폴릭세네. 워. 제법 잔인하게 묘사된 일리아스의 한 장면. 패전국 트로이의 공주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킬레우스와 결혼 직전까지 간 사람한테 너무한 것 아님. 전승에 따라서는 아킬레우스의 영혼이 그렇게 해달라고 시켰다는 썰도 있음. 개너무함.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는 아테나 여신.


굽다리가 소실된 것 같은 그리스 술잔 킬릭스. 외벽 측면에는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의 머리를 쪼개 아테나 여신이 태어나도록 돕고 있음. 깨알 같이 묘사된 흑색상.


고르곤 메두사.


신나게 꿈틀대는 고르곤 메두사의 역동적인 형상. 뭔가 끼얏호우- 하는 느낌이지만 아마 페르세우스에게 살해당하는 중인 듯.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가 장기 두는 미완성 도기.


그리스 흑색상 도기 중 가장 좋아하는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의 장기 게임. 미완성된 상태. 완성된 그림의 도기는 특별전시관에 따로 이동해 있었음.


네레이드 제전 수복 중.


이래야 내 런던이지 2. 대영박물관이 자랑하는 네레이드 제전 통으로 뜯어온 전시관 수복 중. ㅅㅂ


파르테논 신전 구역.


예전에 많이 봤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네레이드 제전 전시관을 자의반 타의반 패스. 파르테논 신전 전시관으로 이동. 많이도 뜯어 왔구나.


전면부 페디먼트 조각.


전면부(였지 아마?) 페디먼트의 조각 구성품. 고전기 작품들이라 매우 섬세하고 구조적이다.


끝내주는 말머리.


유난히 크고 아름다운 말 머리. 다들 그렇게 보이는지 단독 좌대에 따로 전시 중. 파르테논 프리즈는 그리스 반환을 한다고 화제를 모으더니 최근 정당하게 구입한 작품이라는 문서가 발견됐다며 반환 의사를 철회한 듯. 그리스정부: ??? 향후 어찌 전개될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집트 연못.


3층(이었나?) 이집트 전시실 이동. 미술사 책 초반부 이집트미술 챕터에 도판으로 자주 나오는 연못 그림. 네바문이란 양반의 마스타바 무덤 벽화로 사냥 장면과 함께 자주 등장. 이집트 회화의 평면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


모자이크 유리 작품.


업장에 매우 비슷한 모자이크 유리 물고기가 있음. 역시 이집트 유물이었군.


세네트 게임판.


인류 최초의 보드게임으로 언급되는 세네트. 고대 이집트인들이 매우 좋아했음. 사후 세계의 여정에 대한 비유이기도 해서 부장품으로 자주 보임.


혼란의 후기왕조 양식.


그리스 로마의 양식이 흡수된 후기 왕조 이후의 이집트 미술은 대환장파티. 누트 여신의 희귀한 정면 회화.


로마 지배기의 이집트 어린이 미라 관.


파이윰 미라 초상화 같은 양식은 진짜 이집트 맞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듦. 시신을 미라로 보존하는 이집트 전통 종교에 입각한 사후관이 유지되는 가운데 로마의 자연주의 화풍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물이랄까. 8세 정도 된 어린이 미라의 수의용 전신 초상화와 부활의 상징인 뱀을 그린 관 덮개. 고대 이집트인들의 인생 최대 프로젝트가 사후세계를 준비하는 것이었고 또한 죽음이 비교적 만연했던 고대 세계였겠지만 죽은 아이의 부모가 어떤 심정으로 자녀의 장례를 준비했을지 생각하면 조금 먹먹함.


파이앙스 구슬을 엮은 장례용 기물.


일종의 부적 역할을 했던 파이앙스 구슬 장식. 시신 위 어디에 놓였을지는 학자들마다 의견 분분. 한 마디로 아직 정확히 모름.


호쿠사이를 좋아함.


호쿠사이의 작품인 가나자와의 큰 파도는 전 세계 모두의 애정을 받는 작품이라 아트상품이 많음. 대영박물관 아트숍에서 호쿠사이 비누(그린티 향)와 핀 뱃지를 득템. 비누 하나는 보스 2 줬음. 나머지는 서울팀 선물. 거미줄무늬 가방은 옥스퍼드 스트릿의 플라잉타이거에서 할로윈 상품으로 구매. 덴마크 브랜드인데 코펜하겐보다 런던이 더 싸냐고. 북유럽 미친 물가.


가나자와의 파도 핀뱃지.


호쿠사이의 가나자와 파도 핀뱃지는 동생을 위한 선물. 가격 대비 질이 괜찮은 편.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사진·본문 불펌은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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