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지요 카이 유후인에 #4
어째서 새벽형 인간...?
저녁 어스름의 풍광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밤이 찾아온 카이 유후인은 그야말로 암흑의 세계. 종이등의 은은한 조명을 제외하고는 계단식 논과 우리집 별채도 완전히 어둠 속에 침식했고, 폭신폭신한 일본식 이부자리 속에서 반딧불이인 양 반짝반짝거리는 대나무조롱 조명을 감상하다가 기절하듯 잠이 든 모양.
흠칫. 엄청난 개운함을 느끼며 눈을 뜬 시각은 오전 5시. 오 새벽형 인간 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잤더니 신체가 정상적인 루틴에 자동으로 맞춰지는 듯. 어둑어둑한 새벽녘의 하늘 아래 계단식 논 풍광이 또 기가 막힘. 나만 깨어 있는 이 풍경을 개인 노천탕에서 감상해 주기로 결정.
새벽이라 제법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씨에 42도씨 온천수는 최고임. 처음에는 약간 뜨거운 듯 느껴지지만 금세 적응되는 아주 적절한 수온. 극락이 따로 없음.
고개를 젖히면 이런 풍경이 보임. 아직 어둑어둑 푸른 기운이 감도는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단풍나무의 푸른 잎이 엄청나게 운치 있음.
정면으로는 계단식 논 뷰. 카이 유후인에는 왜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것 밖에 없을까.
느긋하게 호사스런 노천탕 목욕을 했는데도 아직 새벽 6시도 안 된 시각. 한층 개운해진 몸으로 다시 한번 이부자리 다이빙. 침실에 누워있기만 해도 테라스 밖으로 초록초록한 유후인의 풍경이 들어온다. 어젯밤 본관 대욕장에 갈 때 입었던 쑥색 유카타와 겨자색 오비가 대나무 쇼파에 걸쳐져 있군. 아침식사 때 사무에를 입을지 유카타를 입어도 괜찮을지 잠시 고민. 왜냐하면 카이 유후인의 유카타는 정말 예쁘기 때문.
계단식 논 풍경을 보니 굳이 테라스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쾌적하게 시원한 바람이 살살 불어 계단식 논의 수면이 조금씩 흔들리는 절경. 게다가 카이 유후인의 별채 비치용 드립백 커피가 굉장히 맛있다!
날이 조금 흐린 듯 구름이 많은 하늘. 해가 뜨면서 유후산이 차츰 밝아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감상.
커피를 다 마셨지만 뭔가 부족한 기분이라 역시 별채에 비치된 호지차를 우려 봄. 제법 좋은 다기도 충실하게 마련되어 있어서 취향껏 즐길 수 있음. 좋아하는 일본 소설가들이 엮은 괴담집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계단식 논 풍경이 잔뜩 보이고. 이렇게 즐거운 새벽 시간을 마지막으로 누렸던 게 언제인지 생각. 음. 기억에 없음. 아마 처음인 듯.
완전히 밝아진 하늘. 생각보다 구름이 많이 걷혀서 하늘이 파랗게 보이기 시작하고 계단식 논의 수면에 하늘이 비쳐 가장 좋아하는 풍광이 완성.
우리집 별채의 테라스에서 보는 좌측은 숲 뷰. 나무 숲 뒤로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유후인 시내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풍광을 자랑. 카이 유후인에서 오전 시간에 아침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듯 소규모 그룹으로 가벼운 동작을 익히는 숙박객들을 봄.
별채의 우측은 본관과 일반 객실 건물이 보임. 숙박동이나 본관의 테라스로부터 별채와 계단식 논 사진을 찍는 숙박객들이 다수 있어서 우리집 테라스에서 쉬다가 흠칫- 하는 일이 좀 있음. 크게 신경 쓰이는 정도는 아님.
햇빛이 제법 따갑게 강해져 테라스의 그늘 쪽으로 꿈틀꿈틀 움직임. 햇빛에 노출된 발이 따끈따끈해서 기분이 좋음.
하염없이 계단식 논 멍. 나는 이 풍경이 왜 이렇게 좋은 걸까.
시원한 바람과 따끈한 햇빛에 머리가 다 말랐을 즈음 다시 한번 개인 노천탕에 들어가면 최고임.
이제 슬슬 8시로 예약해 둔 아침식사를 즐기러 본관으로 이동해야 함.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사진·본문 불펌은 안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