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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토 Oct 29. 2024

무지개

무지개는 있다는 이야기

일찍 퇴근하고 치과에 가는 길이었다. 조금 늦어서 자전거를 타고 가려했지만,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챙긴 우산을 꺼냈다. 비 예보는 없었지만 흐린 하늘을 보고 우산을 가방에 넣었는데 그 예감이 딱 맞았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점점 더 많이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꽤 많이 떨어지고 있었다. 맞아도 괜찮을 정도로 굵지 않은 비였지만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딴생각을 하다가 어리버리 다른 정류장에 내려버렸다. 좀 걷고 싶었는데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몰랐다. 병원에 늦지 않으면서 밖을 걸을 수도 있으니 완벽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빗방울은 점점 줄어들어 거의 내리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 넣은 우산을 다시 꺼내지 않고 조금 내리는 빗방울을 맞으면서 걸었다.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한 후로 해가 저물지 않은 오후의 산책은 오랜만이었다.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면서 가게를 하나씩 지나쳤다. 빵집, 서브웨이, 떡볶이집을 지나쳐 모퉁이에는 장칼국수 가게가 있었다. 다 맛있어 보였다. 그리고 모퉁이에서 눈을 떼고, 횡단보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며 하늘에 눈길이 스쳤다. 그 순간, 떠있는 무지개를 보고 말았다. 엄청 큰 무지개를. 우연히 생긴 작은 무지개가 아니라 하늘에 다리를 만들어둔 듯이 견고하고 거대한 무지개였다.


횡단보도에 다가가자, 건물들은 사라지고 10차선 도로 위로 크게 뻗은 무지개가 보였다. 건물에 가려진 반 쪽짜리 무지개가 아니었다. 완전한 포물선 모양이었다. 내가 이제까지 본 무지개 중 가장 완전했다. 이렇게 크고 그림같은 무지개는 상상 속의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정확하게 빨주노초파남보 색깔의 빛이 두꺼운 띠를 이루고 있었다. 가장 아래쪽의 보라색 빛은 수채화 물감이 번지듯 하늘에 스며들기도 했다.


평소보다 이른 퇴근, 버스 탈 동안 잠깐 내린 여우비, 멍 때리다 잘못 내린 정류장, 하늘이 보이는 넓은 도로 위의 횡단보도. 우연처럼 만난 무지개. 사랑니 실밥 풀러 가는 길이 사실은 무지개를 보러 가는 길이었나 보다.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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