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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가림 May 12. 2022

OST 5만 원짜리 반지로 결혼반지를 맞추다

이게 금이게 은이게

직업이라 내세울 것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는 우리였지만 반지 하나는 맞추고 싶었다. 어렸기에 보여주는 게 낙이었던 우리의 결혼 소식은 누가 소문을 내지 않아도 알아서 잘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더 자랑할만한 게 뭐가 있을까? 자연스럽게 결혼반지를 보여주는 게 누가 봐도 폼나는 자랑이 아닐까 싶었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다 보면 약혼반지부터 프로포즈 링까지 종류가 다양하더라. 나는 이런 게 순서로 정해져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 생각해보면 은색의 다이아 반지로 프로포즈하는 영화 속 장면들이 기억이 나더라. 


https://unsplash.com/@kalebtapp


순간 프로포즈 따위는 없었던 우리의 결혼 약속들이 떠오르며 울컥했다.

우리는 농담 삼아 결혼하자며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누구 하나 멋진 이벤트를 준비해서 결혼을 고백하는 일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조용하지만 개인적인 아름다운 프로포즈를 받을 것이라 (내가 할 것이라는 생각은 또 안 한다.) 말하고 다녔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미 모든 게 진행되어 버리고 있는걸. 나중에 돼서 남편은 허둥지둥 작은 프로포즈 해주더라. 어쨌든 우리는 여차저차 결혼반지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1. 금은방 반지

시댁을 처음으로 방문했던 그 주에 시어머니는 우리를 보시며 "너희가 결혼을 하겠다는 건 잘 알겠는데 반지도 없니?" 하시고는 일하시는 시장 근처 금은방으로 우리를 데려가셨다. 시어머니가 혹시 우리의 결혼반지를 직접 골라주실까 봐 두려웠지만 어쨌거나 선택권은 나에게 있었다.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반지를 골라 가격을 물어보니 80만 원이었다. 처음으로 들어본 반지 가격이었다. 원래 반지가 그렇게 비싼 건가 싶었다. 같은 동네 분이니 괜찮은 가격으로 불렀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장님의 얼굴을 보자니 섬뜩해져서 바로 다른 곳도 보고 싶다며 도망쳤다.


2. 지하상가 반지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꽤나 금은방이 많더라. 지나가다 습관적으로 반지를 보러 들어가게 된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커플링들에 휩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40-50만 원대의 반지들이 어디서 본듯한 디자인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반지 저 반지보다 보니 내가 왜 지하에서 반지를 맞춰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바로 도망쳤다.


 3. 백화점 브랜드 반지

꽤나 큰 백화점을 들어섰다. 1층 광장 같은 공간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주얼리 브랜드들이 모여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었다. 차마 명품 반지는 보러 갈 수도 보러 가기도 무서워 그나마 도전하기 쉬운 1층 브랜드관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러다 눈에 띄게 예쁜 반지를 발견하고 한참을 서서 보고 있었다. 점원이 우리를 보며 결혼반지를 보시나 봐요~ 하고 다가와 자연스럽게 반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새 눈만 높아진 나는 홀린 듯이 반지를 껴보고 예쁘다며 즐거워하고 있을 때 물어본 가격은 120. 이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다음 달 좀만 더 열심히 일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며 고민하던 찰나. '남성분 반지 포함하면 250 정도...'라는 점원의 이어지는 뒷말을 듣고 역시 도망쳤다.


4. OST 반지

캐나다로 돌아가기 며칠 전 우리는 반지를 포기하고 한가로이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눈앞에 보인 ost 매장. 어렸을 때 친구와 우정링을 하자며 돈을 모았던 기억. 친구들이 캐나다로 떠나는 날 위해 사줬던 시계가 떠오르며 슬쩍 구경을 하러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5만 원짜리 커플링. 심지어 가장 단가도 낮은 라인. 은색과 로즈 골드 색의 커플링이었다. 유일하게 가격표가 붙어있던 매장에서 가만히 반지를 바라보던 우리는 그 반지를 사버렸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하기야 고무줄 반지보단 나은 편 아닌가.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돌아다니다 사게 된 우리의 첫 번째 결혼반지. 

처음에는 빛깔이 좋아 남들이 로즈골드 금반지라며 예쁘다고 칭찬해 주더라.

거기에 나는 굳이 금인지 은인지 말하지 않고 가만히 그 칭찬을 들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비싸지 않은 반지여서 그런가 잘 때도 씻을 때도 빼지 않았다. 색이 바래지면 가끔 닦아주며 꾸역꾸역 잘도 끼고 다녔다. 요즘에야 더 비싼 액세서리들도 많아져서 바래진 반지가 어울리지 않아 잘 끼지는 않지만 가끔씩 꺼내 폴리싱 액으로 닦아주다 보면 재밌는 기억들이 떠올라 애틋하다. 


뭐 엄청 성공해서 가난한 과거를 돌이켜보는 건 아니고 지금도 별반 다를 건 없지만
그냥 그 추억이 예쁘지 아니한가?


5만 원으로 사람들의 달달한 축복을 많이 받았다. 

반대로 반지의 정체를 안 아는 언니의 못마땅한 표정도 기억한다.

찜찜한 듯한 그녀의 표정은 아직도 선명하다. 너 이 결혼 꼭 해야겠어?라고 느껴지는 표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돈 5만 원으로 서로를 점찍어두듯 반지를 빼지도 않고 소중히 끼고 다녔다. 

나중에 성공해서 더 좋은 반지 해주겠다며 시간이 지날 때마다 새거 해주겠다는 지금 남편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애틋하게 그 반지를 손가락에 꼭 끼어넣었다. 



그렇지만 뭐 그땐 그때고.

나는 지금 고가의 브랜드 결혼반지를 원한다. 

굉장히 비싸고 이렇게 열심히 끼지 않아도 되는 반지를 원한다.

웬만하면 고이 모셔둘 반지를 찾고 있다.

좀만 더 모으면 250짜리 반지 정도는 사겠지?


그래도 널 가장 이뻐해 주려고 노력할게 이 5만 원짜리 반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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