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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가림 Jun 11. 2022

캐나다는 누군가에겐 종교 같았다.

우리는 한국으로 이민을 하기로 결정했다.

20대 초반 나와 나의 남편은 각자의 목표와 이유를 가지고 캐나다로 떠났다. 나는 한국을 도망가고 싶었고 그는 어학연수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바쁘고 철없는 시간들을 한동안 보냈다. 다양한 문화들과 사람들과의 교류부터 끊임없는 공부와 도전. 이 모든 것을 해내었고 더 좋아지는 삶을 경험했다. 캐나다의 개방적인 문화 때문이랄까. 우리는 어린 나이에 결혼 또한 도전을 하게 되었고 식이나 부모의 개입 없이 결혼에 골인하였다. 그랬던 우리를 보며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그들에게 우리는 힐링 자체였고 딩크족이었으며 부러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우리는 한국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우리에게 많은 장점과 발전을 안겨주었다. 캐나다는 정말로 좋은 곳이다. 


사람을 대하는 방법. 남을 판단하지 않는 법. 친절한 인사법. 정중히 거절하는 법. 개방적인 사고방식. 브래지어를 차지 않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 소수를 소수로 보지 않는 법.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을 인정하는 법. 성에 대한 인식. 운동에 대한 중요성. 음식 문화와 종류 그리고 폭넓은 경험. 정의에 대한 깨어있는 의식. 역사의식. 등 많은 것들에 있어 우리를 '향상' 시켜주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남들이 보는 (캐나다에 사는) 우리는 이랬다.

- 아름다운 자연을 누린다.

- 대인관계 및 직장 생활 스트레스가 적다.

- 복지와 혜택이 우수하다.

- 시댁이 없다.

- 아이를 키우기 좋다.

- 자유롭고 개방적인 삶을 살아간다.

- 눈치 보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

- 돈 걱정이 없다.

- 노후가 안정적이다.

- 외국인 친구들이 많은 게 멋지다.

- 공부하는데 돈이 안 든다.

-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

- 동물에 대한 높은 의식과 복지를 누린다.



하지만 현실은 세계 어딜 가든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도 단점이 있다.

- 아름다운 자연을 보러 갈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 직장 내에서 왕따도 당연히 있고 초과 근무수당 이런 게 지켜지지 않는다. 무기한 계약직이 대부분이다.

- 아파도 병원을 못 간다. 

- 시댁이 없지만 친정도 없다.

- 여기도 사립학교 좋은 명문학교 보낸다고 돈 번다고 난리다. 매일 도시락 챙겨주는 엄마들이 대단하다.

- 각종 마약에 접근하기 지나치게 쉽다. 

- 어떤 선택이든 당연한 책임이 따르는 것은 똑같다.

- 노후가 외롭다.

- 정서적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 학비는 비슷하다. 학자금 대출은 당연하다.

- 학벌은 정말 굉장히 중요하다.

- 버려지거나 학대당하는 반려동물도 매우 많고 법 규제가 없어 의료비는 대략 10-15배까지 올라간다.


https://unsplash.com/@ryoji__iwata


나는 이민 1세대였다. 

이민 사회에 살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 사회가 너무 잘 맞는다고 행복한 사람도 이민 2세대여서 여기서 나고 자라도 맞지 않는다며 떠나는 사람도 존재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캐나다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우리에게 그곳은 어떤 곳이 었을까?


우리는 딩크족이라 지칭한 적도 생각한 적도 없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에겐 캐나다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젊은 딩크족 부부로 낙인이 되어있었다. 대부분이 "나중에 캐나다로 이민 갈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농담처럼 혹은 진심을 다해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캐나다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캐나다에서의 정착을 위한 우리의 영원한 정착과정이 끝나지 않는 것 같았다.


영어를 잘 못하던 초창기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의 홍보팀 부서에서 소위 좋은 대학에서 인턴 온 친구들의 따돌림은 거의 충격이었다. 마치 캐나다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대기업에 근무했던 당시 1년짜리 계약직을 싸인한 후 반년이 지나 연장 가능한 3개월의 계약서로 바뀌는 데에 모든 직원이 동의해야 한다는 압박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5년 동안 계약직인 직원은 그게 이상한 거냐고 도리어 내게 물었다. 남편의 회사는 초과근무 수당이니 새벽 수당이니 이런 게 지켜지지 않았다. 마치 캐나다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대학생활을 한국인은 보이지도 않는 학과에서 보내었다. 캐나다를 진짜로 알고 싶었다. 다양한 교수님들과 학생들. 어딜 가나 문제는 많았다. 쪼잔하게 경쟁하고 뒤통수치고 끼리끼리 모이는 건 똑같다.


캐나다는 나에게 종교 같은 거였다. 말세에 휴거 하여 캐나다라는 천국으로 인도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캐나다에서의 삶은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똑같은 이민 1세대들이 싫어 외국 친구만 고집하던 모습은 조용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현란한 파티보다 조용히 한국 친구와 소주를 마시는 게 좋았다. 정착한 지 꽤 오래된 심지어 성공했다 생각했던 한인 친구가 외롭다고 말하는 걸 보며 캐나다라서 한국이라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 가든 외롭고 치열하고 복잡하다.


이민 1세대에게 캐나다란 많은 수고와 희생이 필요하다. 각종 인종차별을 한두 번 경험이 아닌 매주 한두 번 경험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언어를 알면 알수록 더 차별을 경험할 수 도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뚫기 위해 두배 세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후는 그냥 보장되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돈을 지금 벌어서 세금을 내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희생해서 이민 2세대가 될 우리의 자녀들의 행복을 바란다면 괜찮은 거 아닌가? 자녀가 없다면. 우리가 왜 우리를 이렇게까지 희생해야 할까.


무턱대고 캐나다에 갔던 20대 초반처럼 

20대 후반에 30대 초반에 무턱대고 한국에 돌아왔다.


우리는 누군가의 천국을 떠나 지옥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이 혀를 끌끌 찼다. 

밤늦게 술마시던 날 누군가가 우리에게 면전에 대고 '실패했구나'라고 말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캐나다를 맹목적인 종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글을 쓰고 싶어졌다.


한국이 좋아서 온 게 아니다. 실패해서 온 것도 아니다. 

그저 어딜 살든 사람 사는 게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한국을 떠날 때 이유를 들고 간 것처럼 캐나다를 떠날 때도 이유를 들고 왔다.


자유로운 선택이었다.

그래도 이건 캐나다에서 배운 거니까.

적어도 우리의 선택은 우리 것이길 바란다.


캐나다 사는 우리말고

이런 우리를 멋있다고 말하진 않는게 아이러니 하다. 



메인 사진 제공: https://unsplash.com/@sebastiaanst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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