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끼인 날.
오전 8시 45분 (아침 등굣길)
불편한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가 교통사고 난 그날처럼
예고 없이 울리는 전화벨은 나의 가슴을 큰 폭으로 진동하게 한다
"어떡하지?"
남편이 말을 시작한다.
그래, 역시나 이 시간 전화는 울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세로가 증상이 좀 나왔네"
"어 어떤데?"
"근데 공교롭게도 어머님이 오셨다. 아이들 보고 싶다고 계란이랑 이것저것 싸들고"
"아.."
세로가 아픈 것도 속상한데 그 옆에 예고 없이 나타난 어머님이 계셨다
"정말 공교롭네"
참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다
일단 아이에게 안 좋은 증상이 나와서 속상하고 마음 아픈 게 1번
그리고 왜 하필 이런 모습을 어머님께 또 보여야 하는가 복잡한 심경이다
그리고 웃기게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머님이 오실 때만, 혹은 오시기로 한날에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게 과연 우연일까?
알 수 없이 반복되는 우연의 고리가 그야말로 기이하다.
그래서 내 마음은 두 배 더 불편해지는 것이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사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고
평소 정말 그렇게 잘 지내는데도
어쩌다 찾아오는 먹구름이 끼이는 날에
늘 자리해서 그것을 지켜보고야 마니 무슨 끌어당김이라도 있는 건가?
이런 일상은 거진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에게 두 번째 이벤트가 있었을 때
어머님(할머니)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출근 한 나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세로가 새벽이 좀 아팠어"
"네? 어떻게요?
"자다 말고 몸이 굳어서 힘을 막 주길래~ 내가 주물러주고 그랬어"
"음.. 그래요? 가위눌린 거 아니에요?? 일단, 오늘 유치워 보내셔요~"
정말 몰랐다.
한 달 전 독감 주사를 맞은 날 첫 번째 이벤트로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우리를 퇴원시켰으니까.
그러나 그날 퇴근 후 만난 아이는
어딘가 동공이 흐렸고
나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곧장 응급실을 찾았다.
그리고 당직이었던 신경소아과 의사로부터
오랜 기간 약을 먹어야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도 크게 대수롭지 않았다
'약? 먹으면 되는 거겠지' 하고
밤새고 찍었던 MRI.
뇌에 구조적 문제는 없었지만
뇌파결과지의 그래프는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의사는 '특발성 뇌전증'이라는 진단서를 건네었다.
"진료 의뢰서 써드릴까요?"
"아. 아니요 일단 생각해 볼게요"
그렇게 우리는 두 번 다시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한방 치료와 한약으로 아이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더랬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때 가까이에 어머님 지인분으로 매일 한의사가 우리 집에 방문했고
독감 주사를 맞은 날 첫 증상이 발현됨을 이유로 양방 약제에 대한 불신이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로의 체력이 독한 약을 버티지 못할 만큼 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머님이 계셨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냈는지 모른다.
'오늘은 아이가 무사할까'라는 불안감을 감추며,
아무렇지 않은 듯 출근을 했고
어쩔 수 없는 날에는 세로는 할머니 품에서 무작정 그 고통이 끝나길 기다렸다
벗어나고 싶었다
원망하고도 싶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대지의 기운이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는 얼토당토않은 망상을 해보기도 했다.
유전자를 잘못 가져온 거라 의심마저 들었다.
시간이 흘러 그 장소를 떠나 오면서
안 좋았던 흐름이 끊기기를 바라고 바랐다.
물론 모든 것은 망상이다.
아이의 증상과 어머님의 접촉이 겹치는 것은
나의 기억에 덧대여진 오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려 한다
사실 오늘 아침 나의 뇌리에
뜬금없이 아이의 아픈 얼굴이 스쳐갔다는 것도 소름이다.
왜, 안 좋은 예감은 늘 이렇게 높은 확률로 맞아떨어지는 걸까?
어머님은 왜 , 오늘 갑작스럽게 방문하셨던 걸까?
먹구름이 끼인 날,
우산이 되어주려고 그랬나 보다.
어머님이 없었다면 우리는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어느 한쪽은 직장에 다니지 못했고 온전히 우리의 삶을 이어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님이 함께 그 고통의 순간을 겪어줬기에
힘을 모아 한 발짝 그렇게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머님은 어떤 심정이셨나요?
헤아려 지지 않은 그 안의 깊은 사랑과 슬픔.
나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나혼자만 잘하면 된다고 방어하고 싶었다.
오는 비는 맞을 수밖에 없다.
더 이상의 의구심도 갖지 않겠다.
묵묵히 해야 할 것들을 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감사하게 그것을 청하려 한다.
아이스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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