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2005년 9월 6일
노을이 지기 시작할 무렵, 랄라가 텃밭 옆에 모아놓은 조약돌을 가지고 놀면서 "엄마~ 엄마~" 하고 부른다. 빠른 걸음으로 쫓아 가보니 랄라는 땅에 덜퍼덕 주저앉아 조약돌을 하나씩 하나씩 옆으로 놓으며 각각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
"이건 엄마. 이건 아빠. 이건 엄마 할머니. 이건 엄마 할아버지. 이건 아빠 할머니. 이건 아빠 할아버지. 이건 삼촌. 이건 언니. 이건 아현 언니. 이건 고모. 이건 현수 오빠. 이건 한나 언니. 이건 형규 오빠. 이건 Mrs. Laura. 이건 Ms. Ingrid. 이건 도은이. 이건 Samatha. 이건 Annie. 이건 Amanda. 이건 Issac..." 그렇게 랄라의 조약돌은 하나둘씩 계속 늘어만 간다.
엄마 아빠와 자연만이 랄라가 접하는 세계의 전부였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랄라는 유아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함께하는 삶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번 여름 방학 동안 한국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과 아빠의 대학 후배 일행까지 우리 집을 다녀간 후, 랄라는 비행기를 보면 집에 오셨던 손님들의 이름과 호칭을 하나씩 부르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그만큼 랄라의 작은 머릿속은 이제 좀 더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들로 채워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흐뭇하게 만든다.
스톰과 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이곳에서, 랄라에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나름 고민 중이다. 하지만 먼 타국에서 우리끼리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그것만큼은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을이 물드는 저녁, 랄라가 가지런히 정돈해 놓은 조약돌을 보면서 아이에게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나부터 더불어 사는 법을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