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2006년 9월 29일
지난주부터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금세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랄라를 데리고 놀이터나 공원으로 산책을 가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대안책이 랄라와 함께 하는 미술시간.
요즈음 약간 어스름해지는 시간에 랄라와 함께 얼굴을 맞대고 거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 난 참 좋다. 가끔 쌀쌀한 기온이 감돌면 같이 무릎담요를 나눠 덮는 재미도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미술시간이라고 해서 내가 뭐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니, 대단한 가르침을 줄 수도 없을 테고 그저 랄라와 함께 다양한 미술 도구를 써가면서 노는 거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랄라랑 내가 그림 그리는 동안 스톰은 잠시 자기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때로는 어제처럼 랄라 옆에 나란히 앉아 나를 스케치하고 있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난 어릴 적에 저녁식사 후 갖는 그 여유가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다. 배가 불러오면서 느껴지는 노곤함도 싫지 않았고, 너울너울 해가 지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 없었다. 그리고 하나둘씩 집 안에 불이 켜지고, 낮과는 다르게 보이는 집안의 가구들이며 식구들의 표정을 제법 흥미롭게 지켜보던 기억이 있다.
랄라는 어떤 기분으로 저녁을 맞이할까. 랄라랑 함께 하는 미술시간에는 주로 차분한 분위기의 보사노바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는데, 랄라는 흘러나오는 음률에 맞춰 허밍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랄라는 아주 조용히 행복을 음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나만의 과대망상 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거는 아이의 숨소리가 피부로 느껴지는 가까운 거리에서 같은 일에 열중할 수 있다는 그 소중함이다.
이제 가을이 깊어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곧 비가 자주 내리는 우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랄라에게 약속했듯이,
거실에 장작을 피워 불을 지피고,
나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랄라랑 빗소리에 젖어 미술시간을 즐기고 싶다.
잠든 랄라를 보면 '랄라야 너무 빨리 크지 마...' 하고 몇 번씩 속삭이게 된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돌보고, 또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매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