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큰 취미가 없던 내가 유일하게 관심 있던 영어. 영어 중에서도 그저 따라 읽는 게 재미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몇 개 안 되는 선택지 안에 그래도 언어와 관련된 과가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긴 휴학 끝에 걸려온 교수님의 전화 한 통에 독일로 가게 되었다. 영어도 독일어도 잘 못하는 상태에서 무작정 떠났던 독일에서의 한 학기는 바람처럼 지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갈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처음 집을 떠나 생활해 본 외국 생활이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독일어를 못해 당한(?) 서러움을 극복하고 멋지게 독일인들과 이야기해보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그렇게 어학원을 다니며 1년을 더 지냈다.
그게 나의 20대에 일어난 일 중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아직은 부족한 실력을 어떻게든 높여보기 위해 독일어 자격시험, 독일어 통번역일 등 온 정신을 독일어에 다 쏟아부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있는 독일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독일에서 지낼때 항상 내 책상 앞 메모지에 붙여 놓았던, '독일회사에 취직하기'. 정말 막연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독일회사에 있었다. 독일인들에게 독일어 잘한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 많이 우쭐해지기도 했다. 회사 가는 게 너무 신났고, 일이 힘들어도 재미있었다. (아마도 나는 내적 관종인 것 같다)
독일 회사에서 정말 독일인들과 일하면서 이젠 독일에 가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운은 여기까지였나? 아무리 노력해 봐도 독일로의 취직은 어려웠다. 그만큼 내가 가진 것을 다 놓고 20대의 나처럼 훌쩍 떠날 수 없었던 것인지 많은 것이 내 발목을 잡았다.
지금은 이직해서 정말 독일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있다. 독일어, 독일인 지인들이 그리워질 때면 독일친구들에게 안부인사를 보내거나, 독일 팟캐스트를 듣고, 독일 유튜브를 본다.
독일어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내 의지는
단순히 언어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 인생을 다양한 경험으로 다채롭게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고 호기심 가득하고 용감했던 독일에 있는 나의 모습이 그리워서 인 것 같다.
그래서 내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독일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기록하려고 한다.
나의 주관적인 견해이고 좁은 경험이지만, 관심도 없고 멀리만 느껴지던 독일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또는 독일에 관심 있는 이와 공감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