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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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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Dec 09. 2024

부모님은 죄인일 필요는 없다.

존재만으로 충분하십니다.

부모님은 죄인일 필요는 없다. 


  유학을 갈려고 했다. 못 갔다. 공부할 운이 있었던지, 인격도, 실력도 모두 훌륭한 교수님을 만났다. 국내에서 박사까지 무사히 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하거나 실망한 순간은 없었다. 이젠 국내 연구 수준이 올라온 덕분도 있고, 많은 외국 박사들 덕분에 큰 이점이 안 된 문화도 한 몫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유학을 가지 못한 건 바로 나 때문이다. 


  유학을 위해서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다. 다만, GRE, 토플, 에세이, 추천서가 주축으로 이룬다. 미국에서는 영어가 특히 중요한데, 난 영어를 참 못한다. 영어로 논문도 쓰고, 발표를 한 적도 있지만, 온갖 도구와 철저한 교수님의 검수 덕분에 낼 수 있었던 것이지, 오롯이 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교수님은 영어 공부를 지원해 주시기까지 했다. 시간도 배려해 주고 학원비까지 지원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좋은 스승님을 만난다는 건 공부 운의 다른 말이 아닌가 싶다) 해도 쉬이 늘지 않으니 재능이 없나 보다 했다. 자책하진 않았고, 주어진 바를 열심히 해 다른 재능을 키워냈다. 실력도 시간도 촉박한 탓에 유학을 접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우리 집은 어려웠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부모님은 자신 때문에 못 가신 줄 안다. 부모님은 모든 자식에 죄인이 되는 걸까? 내 자식이 조금의 기회만 있다면 크게 대성할 수 있다는 오해에서 기반된 걸까?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른 착각은 커다란 빚이 되어 있던 모양이다. 


  가끔 공상을 한다.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난 늘 비슷한 답을 한다. "가고 싶지 않다." 또다시 고통 속에 있길 원치 않는다 한다. 결국 자라나 겨우 내가 된 것이니,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더 잘할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정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 지금 쉽지 않은 일이 과거로 간다고 해서 쉬워질 리 만무하다.


  유학을 생각하던 시점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때 우리 집 형편이 넉넉했더라도 난 아마 유학을 가긴 어려웠을 테다. 운이 좋아 갔다고 하더라도 견디는 일에 무척 버거웠을 테다. 요즘 들어 절감하는 사실은 난 강한 유대감이 있는 사람이 곁에 없으면 생각보다 빠르게 쇠해진다는 사실이다. 


  흘러가듯 몇 번 이야기한 적은 있다. 사실 그때 우리 집에 잘 살고 있더라도 난 가기 어려웠을 거라고. 그럼 부모님은 어긋나게 이해하시곤 한다. 부모님 마음 생채기를 걱정하는 효자. 누구에게 대출을 받으셨는지 미안한 마음은 단단했고, 얼마나 고금리인지 빚은 점차 강고해진 모양이다.


  부모님께 참 감사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하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아이들을 건사하는 부모님. 녹록지 않은 삶에서 가족을 지켜내겠다는 일념으로 힘겨운 날을 버텨내신 부모님. 생각만으로 요즘은 울컥거린다. 꼭 이야기해드리고 싶다. 부모님은 죄인일 필요가 없다. 지금 존재만으로 충분하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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