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번 마셔보겠습니다.
막걸리 배달 작전
국민학교 때 기억에 남은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막걸리이다. 그 시절 시골에는 지금처럼 편의점이 있거나, 슈퍼에서 막걸리를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지역마다 거점 양조장이 술을 공급하는 형태였다. 어른이 직접 가는 경우도 있고, 아이를 보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지금은 살 수 있는 연령 확인에 엄격하지만, 그때는 확인 절차란 없었다.
그날은 아버지가 집에 계셨다. 어린 나는 무슨 일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점심이 훌쩍 지나 저녁에 더 가까운 시간인 4시 무렵 친구분이 집에 오셨다. 아버지는 "밝은 달아 양조장 기억나지? 주전자 들고 가서 막걸리 한 되만 받아와라"라고 하셨다. 나는 주방에서 얼른 노란색 주전자를 꺼내 들고는 타박타박 양조장으로 갔다.
더웠던 날이었으나 갈 때는 큰 문제가 없다. 빈 노란색 주전자를 달랑거리며 갔다. 걸어서 20분 남짓 도착한 곳에는 양조장 주인아저씨께서 졸고 계셨다. 양조장 어르신의 비상한 능력은 온갖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졸다가는 얇게 눈을 뜨시곤 이리 오라 손짓하셨다.
"한 되 주면 되지? 무거운데 잘 들고 갈 수 있겠어?"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으니, 기특하셨다보다.
"착하네, 술 지게미 가져가라."며 챙겨주셨다. 그리곤 나는 돈을 건넸고, 주인아저씨는 주전자를 돌려주셨다. "조심히 가거라."라는 소리에 인사를 꾸벅하곤 집으로 향했다.
묵직한 주전자를 들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갔다. 출발한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목이 참 말랐다. '물이 없을까?' 생각하다, '물론 없지' 라며 타는 목을 침으로 적셨다. 하지만 무용지물. 그리고 더 가다가 찰랑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막걸리가 보인다.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가져다 조심스럽게 기울여 꼴깍. 시원하게 내 목을 적셔 준 막걸리는 쓴맛 뒤에 달콤한 맛이 올라왔다. 달콤함 뒤에 따라온 취기는 내 얼굴을 붉게 했으리라. 그리고 가다가 또 한입 꼴깍. 그렇게 연거푸 2번 더 꼴깍 하니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엔 아버지가 나를 빤히 쳐다보신다. 그러다 "허, 허, 허"하며 큰 소리를 웃으시며 "그래 술맛은 어때?"라며 얼른 주전자를 받으셨다. 더운 여름 처음 먹어본 술은 정신을 몽롱하게 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크게 웃었다. 아버진 "다음에는 먹으면 안 된다. 물 한잔 먹고 들어가 누워라."라며 나를 방으로 보내셨다.
내 첫 번째 막걸리 배달 작전이자, 처음 먹어본 술이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국민학생이 술을 가지러 가고 먹는 상황이 말이다. 아버지와의 추억 한 조각을 찾으신 그녀는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나도 그녀와의 기억 조각을 잘 간수해야겠다. 훗날 그 기억이 나를 즐겁게 한 테니까.
사진 출처: Steven 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