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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Apr 03. 2024

15년째 사투리는 여전합니다.

다름의 다른 이름. 다양성.

15년째 사투리는 여전합니다. 


  15년째 내 사투리는 여전하다. 그 덕일까? 최근에 친구 전화가 잦다.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내게 맞는지 채점을 부탁한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유튜브 덕분이다. 최근 몇몇 영상이 빠르게 유튜브를 지배했다. 경상도 호소인이라는 단어가 나돌기 시작했다. 미디어 사투리와 진짜 사투리를 알려주고, 수도권에 살던 이가 경상도 사투리를 어색하게 공부하더니, 경상도 사람이라 인정해 달라고 부르짖는다. 사투리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출처: 할말하않, 피식대학)


  난 시골 출신이다. 통속적으로 하면 깡 시골. 흔한 편의점도 없었다. (물론 지금은 CU도 들어왔다) 흔하디 흔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도 없다. 롯데리아? 버거킹? 맥도널드? 가까운 지역에도 없다. 시내도 아니고 읍내는 뛰어가면 10분이면 주파할 수 있는 작은 동네다.


  동네친구는 곧 학교 친구다. 당시 인생의 절반 이상 아니, 삶의 대부분은 그 친구들과 지냈다. 다른 기준은 없다. 학창 시절의 즐거움도, 힘든 일도 함께 겪어낸 이들이다. 고등학교 막바지. 거친 입시를 하며, 대학의 자유를 동경했다. 시간이 얼마간 흘렀다. 각자 처지에 맞게 떠났다. 누구는 일을 하러 갔고, 누군가는 대학으로 떠났다. 함께했던 친구들 모두 각자의 자리로 흘러갔다. 


  대학은 완전히 달랐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뒤섞였다. 오직 한 번의 시험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던  이들을 만났다. 그럼 꼭 하는 게 있다. "자기소개" 교양이라고 대학 전체를 대상으로 과목보다, 전공과목에서 잦았다. 앞으로 좋든 싫든 4년 동안 만나 공부를 해야 할 사이이기 때문이리라. 


  순서대로 나가 짧게 자기소개를 한다. 이름, 고향, 앞으로의 포부 정도?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마침내 차례가 왔다. 시작은 산뜻하게 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끝내기도 전에 모두들 빵 터졌다. 어리둥절했다. 난 눈치가 없었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봤다. 교수님께서 수습하셨다. 말을 이어갔다. 커다란 웃음은 사라졌지만, 피식거리는 바람 새는 소리는 여전했다. 


  선배들과의 자리에서도, 동아리에서도 시작은 같았다. 빵 터진 뒤, 피식거리는 웃음. 오래도록 시골에서 친구들과 사니 몰랐던 모양이다. 난 사투리가 심했다. 억양이 강하니 다들 웃을만했다. 다행히 부끄럽지 않았고, 그들과 나의 다름만을 알았을 뿐이다. 고치려고 했을까? 안 했다. 이들과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변하리라 믿었다. 그랬을까?


  15년이 지난 지금. 여전하다. 물론 억양은 약해지고, 단어는 표준어를 사용한다. 존댓말을 하거나, 어려운 분들과 이야기를 하면 사투리는 완전히 사라진다(이것도 착각일까?). 반면 편할수록 강세는 오르락내리락하고, 평소에 쓰지 않는 단어가 사람을 당황케 한다. 


  친구는 닮는다고 했나? 내가 사투리가 약해진 만큼 내 친구들은 사투리도 아니고 표준어도 아닌 말을 쓴다. 스며든 모양이다. 이쯤 되니 고민이 된다. 가끔 남들 앞에 서는 내가 사투리를 고쳐야 하나. 시트콤에서 자주 나오는 것처럼 끝을 올리면 표준어를 쓰는 것일까? 아니면, 어려운 분들에게 말하듯 하면 되는 일일까?


  다름. 꼭 고쳐야 할까? 못 고친 이가 하는 변명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다름은 다양성의 다른 말이라 생각한다. 거기다, 다름은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표준어를 구사하는 이가 내 고향에 가서 쓴다면 까르르 웃을 테니 말이다. 다름을 유지하는 일은 괴짜가 되지만, 나만의 특징이 될 수 있다. '나'라는 존재를 기억하게 하는 특징이 될지도 모른다. 기이하지만, 다름이 관심의 중앙에 설 수도 있다. 나를 타인과 극명하게 가르는 사투리. 이젠 사투리와 함께 산다.


  전화를 받는다. 아마, 경상도 호소인일 테다. 피식 웃으며,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고 채점을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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