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예장버스환승센터 이회영 기념관.
"얼마나 떳떳하고 가치 있는가" 죽음을 불사한 형제?
"대한 독립 만세!"
3.1 절.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일이다. 역사책으로만 보던 일. 많은 이들에게 빨간 날, 쉬는 날로 받아들이는 오늘. 3월 1일이 되면, 공상을 한다. 그날 나는 용감히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칠 수 있을까? 최근에 상상을 깊게 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여자친구와 서울 데이트를 했다. 마침, 맛집의 줄을 짧았다. 시간이 남았다. 이때면, 난 박물관, 기념관, 미술관을 찾는다.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선선히 함께 해주는 여자친구와 가까운 친구의 일갈 덕분이다.
"우린 유럽에 가면 기를 쓰고 박물관, 기념관, 미술관을 간다. 자랑처럼 사진을 찍지. 한국에 돌아오면 가지 않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아?"
우린 남산 근처에 있었다. 지도를 펼치니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보인다. 이회영 기념관이다. 기념관은 남산예장버스환승센터 곁에 있다. 걸어가며, 이회영 선생님의 기억을 더듬었다. 겨우 찾아낸 흐릿한 정보에는 명동 땅부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분. 더 찾으려 해도 없었다.
도착한 그곳. 버스를 기다리는 분들이 왔다 갔다 하지만, 조용했다. 내가 몰랐던 여섯 분이 계신다. 짧게 그분의 이야기를 해볼까? 고귀한 희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글을 적는 일이고, 기억하는 일이며, 말하는 일뿐이니.
9대가 정승, 판서, 참판을 지낸 명문가 자손이다. 고쳐보자. 위로 8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국무총리, 장관급, 차관급을 지낸 집안이다. 거기다, 임진왜란의 영웅 중 한 명인 이항복이 바로 그의 할아버지다. 돈에도 단단함이 있다고 한다. 그의 가문의 역사만큼이나 집이 가진 돈은 견고했고, 넓었으며, 강했다.
경술국치. 비로소 조선, 아니 대한제국은 사라진 날. 이회영 집은 결단을 내린다. 묵인하고 대우를 받으며 살 것인가? 이제는 사라진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인가? 가진 자산을 모두 청산한다. 없어진 이 나라에서 떠난다. 명예와 자산을 모두 정리한다. 당시 돈으로 600 억 원. 지금으로 환산하면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약 2조 원. 형제들이 도착한 곳은 만주. 스러저가는 '대한'을 살려내려 돈을 태운다.
독립에는 사람이 필요했다.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뒤에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운다. 독립운동가의 산실의 시작이다. 대한독립을 위한 씨앗을 심은 이들은 어떻게 될까? 가족들은 모두 어떻게 될까? 이회영 기념관에는 그들의 마지막이 있다. 조선 제일의 부자이자 명망가 집안의 자손은 굶어 죽고, 잡혀가 실종되며, 때로는 조사를 받는다는 말 아래 고문으로 세상을 떴다.
역사를 읽을 때, 항상 해본다. 나라면? 재산도 많고, 눈만 잠시 감으면 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 사라진, 언제 다시 부활할지 모르는, 아니 모두가 잊고 있는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을까? 그것도 혼자가 아닌 내 가족 모두와 함께?
못한다. 3월 1일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일도 주저하는 검쟁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기념관을 다 돌고 나오니, 짧게 기록된 역사책의 행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고뇌. 그들의 고됨. 그들의 고통. 난 감히 할 수 도 없는 결정이다. 그분들의 희생 위에 오늘 난 앉아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모든 일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3월 1일이 돼서야 알게 된다. 그분들이 만들어둔 마당이 있기에 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분들의 기록을 다시 찾아보고 잊지 않으려고 하는 일뿐이다. 조용히 읊조릴 뿐이다. 누가 위협하지도 않지만. 그분들이 간절히 하고 싶었던 말을 해본다.
"대한 독립 만세."